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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외이사와 이해충돌> 사설
작성일 : 2020-10-22 08:42조회 : 1,824
<사외이사와 이해충돌> 사설
신문 사설은 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기초해서 신문사의 방향에 따라 논리를 구성해서 쓰는 게 보통이다. 같은 주제를 같은 방향으로 쓰더라도 쓰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작품이 달리 나오게 된다. 풍부한 지식에 근거한 명확한 논리 구성과 자연스러운 문장력이 사설의 생명이다.
매우 드물게 사설이 언론보도로 나오지 않은 중요한 사안을 발굴해서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거나 책임있는 사람이 물러나게 된다면, 그 사설은 그야말로 '특종'이다. 다른 신문들은 멍하니 보든가 뒤늦게 따라서 쓰던가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할 때는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이라서 신문 사설을 쓸만 했다.
그런 사설 특종을 몇차례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외이사 겸직 문제였다. 1998년부터 대기업은 사외이사를 두게 됐는데, 그러자 경영학 경제학 교수들이 살 판이 났다. 그런데 정부 내 이런저런 위원회의 위원을 하면서 사외이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던 중 환경운동하는 최열 대표가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를 한다는 기사가 여러 신문에 크게 났다. 논설실 회의에서 이걸 사설로 쓰는 게 어떠냐고 해서 나는 그 보다는 큰 차원에서 이해충돌 문제를 다루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2000년 9월 18일자 사설 <사외이사와 이해충돌>이다.
내가 정말 말하고자 했던 바는, "사외이사를 하는 교수나 변호사가 기업에 관한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 정부 위원회의 위원을 겸한다면 심각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이었다.
다음날 보니까 다른 신문들은 환경운동의 도덕성이니 뭐니 하는 사설을 썼는데, 바다에 배 지나가듯 아무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집어 넣은 한 문장 때문에 총리실과 청와대가 뒤집어졌다. 정부 각 부처 위원회 위원들의 사외이사 겸직을 전수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며칠 후 조사 결과가 나와서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다. 제일 중요한 공정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비상임 위원에 위촉된 교수들이 대재벌 기업의 사외이사들이었다. 위원이 된 후에 사외이사가 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SKY대 교수였는데, 둘 중 하나를 그만 두게 되자 매월 급여가 수백만원 나오는 사외이사를 지킨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조선일보 논설실이 크게 특종을 한 셈이었다. 그 후 정부 위원회 위원 위촉시는 사외이사 여부를 확인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논설위원을 그만 둘 무렵인 2003년 9월에도 다른 신문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사실을 내가 파악해서 사설로 써서 해당 장관이 며칠 후 사퇴한 일이 있었다. 그것도 사설 특종이었는데, 기회를 보아서 나중에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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