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공화당 전성시대
2020-11-09 12:03 23 이상돈


10월 31일

공화당 전성시대


미국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공화당은 광야에서 꽤 오랜 기간 수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1966년 중간선거를 되돌아 볼만 하다. 1964년 선거에서  참패한 공화당이 2년만에  다시  일어났을 뿐더러  이 선거를 계기로 3명의 대통령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1964년 대선에서 존슨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64년 선거는 공화당의 가록적인  참패였다. 존슨의 선거전략은 교활했고, 골드워터는  무력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비명에 간 존 F. 케네디의 후광을 업고 유리한 선거를 했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2석을 상실해서 32석, 하원은 무려 36석을 상실해서 140석을 얻는데 그쳤다.

승리에 고무된 존슨은 베트남에 군사개입을 감행했으나 전쟁은 쉽지 않았고, 대도시 곳곳에선 인종폭동과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196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2년전 패배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공화당은 상원 의석을 36석으로, 하원은 187석으로 늘렸다. 1964년 패배 이전 보다 의석을 늘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공화당이 선전한 데는 리차드 닉슨의 역할이 컸다.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닉슨은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갔으나 현직 주지사인 민주당의  팻 브라운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다. 1966년 중간선거에서 닉슨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화당 후보를 지원했고, 이로서 정치적 재기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라디오와 TV 스타인 로널드 레이건은 1964년 대선 때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연설로 유명해졌는데,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레이건은 팻 브라운 주지사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4년전 닉슨이 당했던 수모를 통쾌하게 설욕한 것이다. 레이건은 복지수당 타먹는 낭인들을 일터로 보내고, 사회주의자들로 더렵혀진 버클리를 청소해 버리겠다고 공언해서  보수세력과 자유시장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남북전쟁 이후  텍사스 등 남부는 민주당의 아성이었다. 텍사스 휴스턴의 부촌과 해리스 카운티를 포함한 지역에 새로 생긴 하원 지역구에선 공화당 후보 조지 H. W. 부시가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예일대 졸업 후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을 해온 부시는 64년 선거에서 현역인 야보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패배한 후 2년만에  하원 선거에 도전해서 성공한 것이다. 부시는 민주당의 아성이던 텍사스에 오랫만에 공화당 하원의원 깃발을 꽂은 두명 중 한명이었다.

언론은  공화당 불모지인 텍사스에서 당선된  젊고 매력적인 부시를 주목했다. 2차대전 전쟁영웅이고 예일대 출신인데다가, 그의 아버지는 코네티컷 출신 상원의원이었다.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벌인 선거운동은 케네디 가족을 연상시켰다.

이렇게 해서 66년 중간선거는 닉슨이 2년 후 대통령이 되고,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가 공화당의 대통령 감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레이건은 1970년에 주지사 연임에 성공하고 1975년 1월까지 재임한 후 대선을 준비하게 된다. 부시는 68년에 연임에 성공한 후 70년에는 상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유엔 주재 대사, 중국 주재 대사, 중앙정보국장을 역임하고 대선을 준비하게 된다. 이들이 1980년대 공화당 전성기를 이끌어가면서  냉전을 승리로 마무리했고, WTO로 상징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었다.

사진은 1990년 7월,  닉슨 기념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한 공화당 전현직 대통령.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공화당 
힐러리를 감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