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제임스 베이커, 트럼프를 꾸짖다
2020-11-12 20:58 22 이상돈


11월 8일

제임스 베이커, 트럼프를 꾸짖다


미국 공화당 인사 중 최고 원로로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제임스 베이커 James Baker, III이다.  금년에 90세인 베이커는 프린스턴 대학과 텍사스대학 로스쿨을 나오고 휴스턴에서 변호사를 하던 중 조지 H. W. 부시와 알게 되어 테니스를 같이 하는 등 친하게 지냈고, 부시의 선거 참모를 지내면서  그 후 부시와 평생을 함께 했다.

부시가 1980년 공화당 대선 예비선거에 나갔을 때 베이커는 부시 캠프를 지휘했다.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레이건은 자기와 경쟁한 부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대통령 후보가 경쟁상대였던 사람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레이건은 부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서 당의 화합을 이루어냈다. 더 놀라운 일은 레이건이 부시의 선거참모장인 제임스 베이커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사실이다. 베이커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오직 레이건 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되돌아 보았다.

베이커는 레이건 1기에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2기에는 재무장관을 지냈다. 재무장관을 지낼 때 플라자 합의를 성사시켜서 나중에 일본이 피눈물을 흘리게 됐다. 88년 대선이 다가 오자 재무장관을 사임하고 부시의 선거를 지휘하게 됐다. 재무장관을 사임하는 베이커에게 레이건은 "자네는 우리 성공의 비결이었네. 이제 조지를 위해 다시 하게나" (Do it again for George.)라고 격려했다.

88년 대선에서 승리한 부시는 베이커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서 동독 붕괴로 시작된 동유럽 사태에 대처했고,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유엔 결의를 통과시켜서 걸프 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부시 정부는 냉전 후 처리와 걸프 전쟁 등 대외정책에 주력하느냐고 국내 정치에 소홀했다. 1992년 선거를 앞두고 부시는 뒤늦게 존 수누누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베이커에게 비서실장을 맡아주도록 했으나 결국 9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 후 베이커는 부시와 함께 휴스턴으로 내려왔다.

베이커는 2000년 대선 투표 후 플로리다 재검표 문제가 생겼을 때 공화당을 대표해서 법률팀을 이끌었고, 대법원에서 승리해서 아들 부시는 대통령이 됐다. 아버지 부시와 베이커는 아들 부시 정부에 훈수를 두거나 간여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 후 트럼프 진영에서 우편투표 개표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등 이야기가 나오자, 제임스 베이커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따금하게 한마디 했다. 이런 것이 원로가 하는 일이다. 공화당이 번영을 구가할 시절에는 베이커 같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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