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루디 줄리아니의 추락
2020-11-13 20:37 16 이상돈


11월 9일

루디 줄리아니의 추락


사진은 트럼프의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가 어제 선거 부정 소송 방침을 밝히는 폭스뉴스 장면이다. 줄리아니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에 저렇게 추하게 될 수 있구나고 생각하게 된다.

금년에 76세인 그는 9.11 테러 때 뉴욕시장으로 굴복하지 않는 미국의 정신을 상징했다. 타임지는 그를 '미국의 시장'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뉴욕시가 운영했던 소방대 무선교신장비가 불량해서  세계무역센터 안으로 들어갔던 소방대원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중에 제기되기도 했다.

여하튼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있었던 8년 동안 뉴욕시는 훨씬 안전하고 깨끗해져서 뉴욕이 가졌던 명성을 되찾게 됐음은 그의 업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줄리아니는 연방검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포드 행정부에서 법무부 국장급으로 있으면서 현직 하원의원을 이해충돌 독직혐의로 기소하고  공격적으로 재판을 이끌어서 유명해졌다. 레이건 대통령은 37세인 줄리아니를 법무부 차관보로 임명했는데, 줄리아니는 현장에서 뛰고 싶어서 맨해튼 등 뉴욕시를 관장하는 연방검찰 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방검사장으로서의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줄리아니는 FBI 및  뉴욕경찰국과 함께 마피아 소탕에 나서서 이태리계 마피아 두목들이 줄줄히 잡혀 들어갔다. 그 때 마피아들은 줄리아니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줄리아니가 이태리계이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분노했을 수도 있다.

줄리아니는 월가의 금융사기범들에 대해 철퇴를 가했다. 당시 물의를 빚은 정크 본드 사건의 마이클 밀리켄 등을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줄리아니 만큼 연방검사장으로서 활약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경우가  없었다. 그만큼 줄리아니는 'law and order'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줄리아니는 2008년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 나섰으나 여론조사와는 달리 부진해서 포기하고 존 매케인을 지지했다. 줄리아니는 이즈음 두 번 째 부인과의 관계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첫번 부인과 이혼과 재혼, 전립선암 치료 중 또 다른 여인과 관계, 두번 째 부인과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 세번째 부인과 결혼, 그리고 또 이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왕년의 연방검사와 뉴욕시장이 이런 일로 언론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한심한데, 이런 과정을 거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2016년 대선을 계기로 줄리아니는 트럼프의 법률고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70이 넘은 살찌고 늙은 줄리아니에겐 30-40대의 카랑카랑한 검사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누가 보더러도 그가 돈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줄리아니는 단순한 법률고문이 아니었다. 그는 트럼프를 대리해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조 바이든의 아들과 관련된 문제에 개입했다. 바이든의 아들 문제를 폭로하면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를 하겠다는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됐고, 민주당은 이를 문제 삼아 트럼프를 탄핵하려 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바이든 정권이 들어서면 트럼프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거래에 대해  법무부와 FBI는 강도높은 수사를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 시절 미국 법무부와 FBI는 그야말로 오욕의 시간을 보냈다. 트럼프 본인은 물론, 딸 아들 사위 등 가족, 트럼프가 임명한 법무부 장차관들이 그 표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줄리아니도 법무부의 후배 검사들에 의해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줄리아니의 말로를 보면서, 사람은 마지막을 깨끗하게 보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치유를 할 시간’ 
제임스 베이커, 트럼프를 꾸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