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트럼프의 말로
2020-11-14 20:25 15 이상돈

11월 10일

트럼프의 말로


트럼프가 소송을 걸고, 그러면 보수 대법관이 우세한 대법원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미국이 혼미에 빠질 것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미국 헌법과 선거절차를 모르는 이야기이다. 2000년 대선 후 대법원은 플로리다 주의 재검표를 중단하는 권한은 주 정부에 있다고 판결했다. 헌법은 선거인단의 선출을 주(州)의 권한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투표권은 기본권이지만 일부 지역만 재검표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면서 앨 고어 측 주장을 배척했다. 지금은 몇몇 주에서 재검표를 해도 결과가 뒤집어 질 수도 없고, 시한 내에 재검표를 못 끝내면 원래 개표 결과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라고 해도 그들이 트럼프처럼 미친 사람은 아니니까 대법원이 트럼프 편을 들 가능성은 제로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바이든이 취임하는 1월 20일까지 긴 시간이 남아 있다는 데 있다. 미친 사람에게 두 달은 너무나 긴 세월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 시작은 1월 20일 정오이며, 이때에 맞추어 취임식을 한다. 대통령 선거일부터 72일에서 78일 동안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준비를 하고 물러나는 대통령은 권한 행사를 최소화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1월 20일까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사면권을 남용할 가능성은 100%다. 영미법계에선 재판이나 기소에 관련 없이 장래에 향해서도 사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자기 패거리를 사면할 가능성은 확실하다. 워낙 이상한 사람이니까 군 통수권을 행사해서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라고 명령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경우 합참의장이 명령을 거부하겠지만....

이런 미친 상황이 벌어진다면 헌법 수정 25조 4항 절차를 발동할 수 있다. 부통령과 각료의 과반수 결의로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이를 서면으로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의장에 통보하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경우 대통령이 자기가 직무수행을 할 수 있다고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의장에게 통보하면 대통령은 권한을 회복하게 되나, 이 경우도 4일내에 부통령과 각료의 과반수가 결의해서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의장에게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다시 통보하고 의회가 21일 내에 상하원 각각 2/3로 이에 동의하면 대통령은 직무가 중단되고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따라서 극단적 상황이라면 펜스 부통령, 펠로시 하원의장,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합의를 이루어 이런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트럼프를 1월 20일 전에 끌어내릴 수 있다. 

선거 후 대통령 취임까지 공백 기간이 길다고 생각하겠지만 과거에는 그 기간이 4개월이나 됐었다. 미국 정부가 구성된 날자는 1789년 3월 4일이다. 의회도 그 때부터 기능을 시작했는데, 조지 워싱턴은 4월 30일에야 대통령에 취임했다. 2대 대통령 존 애담스부터 3월 4일에 취임식을 하게 됐다. 의회와 대통령의 임기를 3월 4일에야 시작하게 했던 것은, 선거 제도가 복잡해서 시간이 걸리고, 당시는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물러나는 대통령과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1800년 대선 후에는 물러나는 존 애담스 대통령의 연방파 Federalists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당선자의 공화파 Republicans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있었다.

1800년 대선은 연방파와 공화파가 격돌한,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파당적인 선거였다. 선거인단 투표 결과 공화파인 토머스 제퍼슨과 역시 공화파인 에런 버가 똑 같은 최다득표를 해서 하원이 결선투표를 하게 됐다. 1801년 2월 1일부터 17일까지 하원은 36차에 걸친 투표 끝에 제퍼슨을 대통령으로, 버를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36차 투표 때 연방파의 지배하에 있던 메릴랜드 주와 버몬트 주가 제퍼슨을 지지해서 16개 주 중 과반수를 넘는 10표를 얻어 당선이 된 것이다. (제퍼슨에게 패배해서 부통령이 된 에런 버는 마지막 순간에 제퍼슨을 지지해서 교착상태를 타파한 연방파의 수장이며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튼에 결투를 신청했고, 해밀튼은 그 결투에서 사망했다. 제퍼슨이 버를 살인죄로 기소하자 버는 도망을 가서 제퍼슨은 그를 반역죄로 기소하려했으나 실패했다. 이 경험으로 제퍼슨은 헌법을 고쳐서 1804년 선거부터는 부통령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선출토록 했다. 에런 버는 미국 최초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기록을 갖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상하원 선거에서도 패배한 연방파는 애담스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사법부를 장악하고자 했다. 애담스 대통령은 그 기간 동안에 자신의 국무장관이던 존 마셜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마셜은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국무장관을 겸하면서 연방파 정치인들을 치안판사 등에 임명했다. (mid-night appointment라 부른다.) 마셜 대법원장은 자신의 정적(政敵)인 제퍼슨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 취임선서를 주관하고 그 후 34년 동안 대법원장으로 재직했다. (존 마셜은 버지니아 출신이며 제퍼슨과 먼 친척이고 윌리엄 앤드 매리 대학 동문이지만 정치철학이 달랐다.) 

3월 4일에 대통령과 의회 임기가 시작하게 됨에 따라 11월 선거 후 4개월 동안 정부가 공백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1860년 대선은 노예 제도를 두고 북부와 남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치러졌는데, 민주당이 남과 북으로 분리되어 각기 후보를 내는 덕분에 공화당 후보 링컨이 당선됐다. 당시 대통령이던 제임스 뷰캐넌은 내전 위기로 치닫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고, 당선자 신분인 링컨도 아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기간 중인 1860년 12월 24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는 연방이탈을 선언했고 다른 남부 주도 뒤 따랐다. 대통령 취임일까지의 긴 공백 기간으로 인해 남북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그냥 보내 버렸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민병대는 그 주에 있던 미군기지 포트 섬터를 공격해서 결국 내전이 시작됐다.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헌법 수정 20조는 1933년에야 발효되어서 1937년부터 시행되었다. 이로서 의원 임기는 1월 3일에 시작하고, 대통령 임기는 1월 20일에 시작하게 됐다. 오늘날은 이 기간 동안에 대통령이 행사하는 사면권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겠다.

퇴임하는 대통령의 사면권 
‘치유를 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