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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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 feel your pain."
작성일 : 2020-12-17 09:04조회 : 93


"I feel your pain."

정치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처지를 이해한다는 식으로 하는 발언을 흔히 "I feel your pain"이라고 부른다. "당신들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말인데,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 때문에 유명해졌다. 199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10월 15일에 열린 후보 토론회는 선거를 결정지어 버렸다. 부시를 응원했던 나도 그 토론회를 보고 틀렸다고 생각했고, 한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 토론회에서 한 흑인 여성 방청객이 “국가 부채가 후보에게 어떤 개인적 영향을 주며,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 고통을 받지 않으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경제 문제에 대해 솔직히 치료방법을 내놓을 수 있냐”고 각 후보에게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부시 대통령은 “국가부채가 이자율과 관계가 있고 ..” 등등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빌 클린턴은 “나는 작은 주의 주지사를 12년간 했으며, 그래서 나에게 미친 영향을 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매년 의회와 대통령은 법률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많은 일을 하도록 하지만 그 일을 할 돈은 적게 주고 있다. 부자들은 감세를 향유하지만 중산층은 서비스를 덜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버리면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 공장을 운영했던 사람들을 나는 안다”고 거침없이 답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능란하게 답하는 클린턴을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았고 그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언론은 클린턴의 이러한 'I feel your pain' 답변으로 선거 판도가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클린턴이 주지사를 12년 동안 한 아칸소 주는 주민 1인 당 소득이 50개 주 중 49위에 그치는 빈곤한 주이다. 항상 꼴찌를 하던 미시시피 주가 어느 해에 꼴찌를 면하고 아칸소가 꼴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미시시피가 만세를 불렀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에 대해서 주지사를 12년 동안 하면서도 소득수준이 꼴찌이니까 당신 책임이 아니냐는 식으로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부시는 도대체 토론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조지 H. W. 부시는 단임 대통령으로서 많은 일을 이루었지만 재선에 실패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말년의 부시에게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하면서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재임하던 4년 동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는 등 국제정세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나 유엔 주재 대사와 중앙정보국장, 그리고 부통령을 지낸 부시는 위기를 냉전종식의 계기로 만들어 냈다. 부시는 또한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쟁인 걸프 전쟁을 통해서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세계에 알렸다. 임기 중 북미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 협정을 완성했고, 1990년 대기정화법과 장애인기본법을 제정해서 시행토록 했다. 저축은행(Savings and Loan)들의 집단 부도를 막기 위해 재정을 풀어서 금융위기를 해소했다. 하지만 균형재정을 중시했던 그는 세금을 올려서 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샀고, 정부 지출을 삭감해서 진보주의자들의 비난을 샀다. 

걸프 전쟁을 치르면서 너무 긴장한 부시는 전쟁이 끝난 후 “이제 더 이상 내가 대통령을 할 필요가 있는가?”하고 단임으로 은퇴할 생각마저 했다. 1988년 대선 때 부시 팀에서 대응 전략을 세웠던 리 애트워터 Lee Atwater는 백악관에서 일하다가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했는데, 부시는 그의 후임을 구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부시는 미국인들이 클린턴 같은 병역기피자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미국민은 2차 대전 참전세대가 나라를 이끌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 후 “I feel your pain"은 클린턴의 대명사가 됐는데, 섹스 스캔들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곤혹을 치르게 되자 폭스뉴스의 숀 해니티 등은 그런 클린턴을 향해 "We feel your pain"(“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알고 있어”)이라면서 조롱을 했다.

그런데, 원래의 "I feel your pain"은 대선 토론과는 다른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1992년 3월 맨해튼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한 에이즈 환자가 “에이즈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시비하는 어투로 질문을 하자 클린턴은 화를 내면서 “내가 그걸 야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무언가 하려고 한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개인적으로 힐난한다면 당신은 듣기 좋은 말이나 하는 제리 브라운 등 보다 나을 게 없다”고 반박했다. 언론은 클린턴의 이 발언을 크게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제리 브라운은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왔는데, 북미자유무역협정 폐기, 세금 인상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세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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