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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진호 전투 70주년
작성일 : 2020-12-23 16:32조회 : 101


장진호 전투 70주년


장진호 전투 70주년을 맞아서 관련된 기사를 요즘 보게 된다. 12월 4일자 중앙일보에도 장진호 전투를 다룬 칼럼이 실렸다.  2002년 2월 2일자 조선일보 해외서평란에 당시 베스트셀러이던 마틴 러스(Martin Russ)의 <브레이크아웃>(Breakout)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검색을 해보니까 '장진호 전투'로 검색이 되는 기사가 거의 없었고 장진호가 나오는 무슨 소설이 있었다. 그만큼 한국 전쟁 중 미군이 치른 전투에 대해선 관심이 적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평리 전투도 그 후에 관심이 일어나서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중앙일보 기사에 나오는 이종연 변호사는 고대 영문과 출신으로 영어를 하셨기 때문에 통역장교로 미 해병 1사단 일원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그 책에는 Lt. John Lee로 나오는데, 2000년대 초에는 서울의 로펌에 일하고 계셔서 조선일보 지면에 직접 인터뷰가 실렸다. 이 책은 나중에 번역되어 나왔고 그 역자와 이종연 변호사님과 그 후 저녁 식사도 같이 하곤 했는데, 그 때가 2002~03년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 후 이 변호사님은 미국 버지니아로 돌아가셨는데, 오랜만에 소식을 듣게 되어 반가웠다.

2000년은 한국전쟁 50주년이었고 2010년은 60주년이었다. 그 10년 동안 나는 미국에서 출간된 한국전쟁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요약해서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2010년 여름에 버지니아를 방문하던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 1사단장을 지낸 스미스 소장의 외손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글을 모아서 2013년에 펴낸 책이 <미 해병대 한국을 구하다>이다.

6.25 전쟁 중 미 해병대의 역할로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그리고 장진호 전투가 알려져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전투로는 밀양 방어 작전을 들 수 있다. 1950년 8월 초,  다부동 전투가 있기 전에 북한군은 밀양을 점령하기 위해서 진해 고성을 거쳐 밀고 들어 왔다. 낙동강 방어선을 두고 선발대로 한국에 도착한 미 해병 여단(사단으로 편성되기 전 2개 연대로 구성)은 치열한 전투 끝에 남부 낙동강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 때 밀양을 빼앗겼으면 삼랑진이 함락됐을 것이고, 그러면 부산과 대구를 잇는 경부선이 차단되어서 대구로 올라가는 군수물자와 병력이 중단되고 대구가 무너지고 이승만 정부는 대마도로 망명(도망)을 했을 것이다.

밀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8월 초, 북한군 정예기갑부대가 밀양으로 가기 위해 경남 고성을 지나고 있었는데, 한국군은 근처에 있지도 않아서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 우연히 미 해병대 정찰기가 탱크 장갑차 트럭 등 118대 차량으로 움직이던 인민군 부대를 발견했고, 얼마 후 미 해병대 코르세어 전투기 편대가 발진해서 이들을 전멸시켜 버렸다. 이것이 미 해병대 전사에 빛나는 ‘고성 칠면조 사냥’ Kosung Turkey Shoot이다.

칠면조는 덩치가 크고 날지 못해서 총으로 쏘아 잡기가 쉬워서 이런 표현이 생겨났는데, 그 꼴이 돼 버린 것이다. 미군은 차량 118대를 파괴했다고만 기록하고 있고 현지에 미군이나 한국군 지상군이 없어서 정확히 북한군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알려지지가 않았으나 대략 1,000명은 넘었을 것 같다. 기계화 부대 1000명이면 엄청난 병력인데, 그들이 밀양 전투에 가담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정예부대가 한 순간에 궤멸되어 버린 것인데, 파괴된 차량과 북한군 시체가 어떻게 됐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경남 고성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오래 산 분들께 혹시 6.25 때 북한군이 무더기로 죽은 일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어떤 이가 고성 읍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썩둔’이라고 부르는 언덕이 있는데, 그게 6.25때 미군 공습으로 죽은 북한군 시체를 무더기로 파묻고 흙을 덮은 곳이라고 전해 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시 8월 초 무더위에 인민군 시체가 썩어 나가니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시체를 구덩이를 파고 묻었는데 시체가 너무 많아서 언덕 모양이 되었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해서 ‘썩둔’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공습으로 부서진 북한군 차량은 고철로 처리됐을 것 같다.) 그 때 미 해병 정찰기가 우연하게 그 부대를 발견해서 한국 현대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 공항에 도착해 있는 미 해병대 코르세어 Corair기(機)와 당시 한반도 근해에서 작전 중인 미 해군 호위항공모함(Escort Carrier)와 미 해군 코르세어기이다. 한국전 당시 미 해군 경항모에서 발진한 해군 코르세어와 원산 비행장에서 발진한 해병대 코르세어는 맹활약을 했다. 코르세어는 저공비행을 하면서 지상의 적군에게 정확한 기총소사와 포격으로 장진호에서 퇴각 중인 미 해병대를 지원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지치지 않고 출격했던 코르세어 조종사들은 장진호 전투의 또 다른 영웅들이었다.

6.25 당시 미 공군은 머스탱 전투기와 당시 실전에 처음 배치된 F-86 세이버를 운용했으나, 미 해군과 해병대는 2차 대전의 유물인 코르세어 전투기를 낙동강 방어,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 해병대가 가는 곳마다 투입했다. 코르세어는 성능은 머스탱에 비해 떨어지는 구식이었지만 한국전쟁에서 지상군 지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전쟁 후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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