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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거부한 퇴임 대통령
작성일 : 2021-01-09 21:49조회 : 19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거부한 퇴임 대통령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패배해서 백악관을 나오는 경험은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참담한 것이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날 일어나서 빌 클린턴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부시에게 클린턴은 단지 철없는 병역기피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시는 1994년에 아들 조지 W.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되자 비로소 그 때의 충격을 극복했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가장 인정하기 어려운 패배를 당한 사람은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 1837-1908)이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1888년 대선에서 일반투표는 승리했으나 선거인단 표에서 벤자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 1833-1901)에게 패배했다. 클리블랜드는 대통령이 된 후에 21살 밖에 안 된 젊고 매력적인 프란세스와 백악관에서 결혼했는데, 프란세스는 3년 만에 24살 나이로 백악관 안주인 자리를 내주고 떠나게 됐다. 프란세스 여사는 기자한테 “우리는 돌아 올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워싱턴을 떴는데, 4년 후 1892년 선거에서 승리해서 클리블랜드 부부는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미국에서 퇴임하는 대통령이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로는 1869년과 1829년 두 차례 있었다. 링컨의 부통령으로 있다가 링컨이 암살 당한 후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 : 1803-1875)은 남부와의 화해를 주장해서 공화당내 강경파와 충돌해서 결국 이들에 의해 탄핵 소추를 당하고 상원에서 한 표 차이로 탄핵을 간신히 면했다. 1868년 대선에서 율리시즈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가 당선되자 그는 남부연합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 데이비스 등 남부 인사들을 서둘러 사면했고, 1869년 3월 4일 그랜트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거부하고 그날 마차를 타고 백악관을 나와 고향 테네시로 향했다.
 
1824년 대선은 후보 네 명이 나왔는데, 일반투표와 선거인단 표에서 미영 전쟁의 영웅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 1767-1845)이 1등을 했으나 선거인단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서 하원 선거로 넘겨졌는데, 하원은 존 퀸시 애담스(John Quincy Adams : 1767-1848. 2대 대통령 존 애담스의 아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일반투표에서 4위를 한 헨리 클레이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한다는 묵계가 있어서 클레이의 지지를 받아서 퀸시 애담스가 당선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4년 후 1828년 대선에서 앤드류 잭슨은 일반 투표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퀸시 애담스를 누르고 승리했다. 앤드류 잭슨 지지자들은 퀸시 애담스가 하버드를 나와서 일반 국민을 잘 모르고 영국 아내(English Wife)와 같이 산다고 비난하는 등 선거는 매우 치열하고 더티했다. 퀸시 애담스 지지자들은 앤드류 잭슨의 부인 레이철 여사가 이혼수속이 완결되지 않은 채로 잭슨과 결혼했다면서 ‘불륜 부부’라고 몰아 붙였고, 건강이 나쁜 레이첼 여사는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시름시름 앓더니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인 1828년 12월 말 사망했다. 앤드류 잭슨은 퀸시 애담스 때문에 자기 부인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하버드를 나오고 몇 개 국어를 하면서 대사와 국무장관을 지낸 퀸시 애담스는 앤드류 잭슨을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야만인‘이라고 평소에 주변에 말하곤 했다. 퀸시 애담스는 앤드류 잭슨의 취임식 참석을 거부하고 고향 보스턴으로 향했다.

사진은 퀸시 애담스와 앤드류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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