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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이 된 부통령
작성일 : 2021-01-10 17:10조회 : 21


대통령이 된 부통령

미국 대통령 중에서 연임을 하고 그와 함께 부통령을 한 사람이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지 워싱턴은 두 번 임기를 마치고 그 뒤를 이어서 존 애담스 부통령이 대통령이 됐지만 워싱턴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기의 첫 임기 때 국무장관을 지냈던 토머스 제퍼슨이 존 애담스와 정적(政敵)이 되어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차점자가 부통령이 되어서 지금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관계와는 사정이 달랐다.

조지 워싱턴에 이어서 존 애담스가 대통령이 됐고 토머스 제퍼슨이 차점자로서 부통령이 됐으나 이들은 소속 정파가 달랐다. 정치철학이 다른 존 애담스 아래서 4년 동안 부통령을 지낸 제퍼슨은 혼란스러웠던 1800년 선거를 통해 하원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제퍼슨의 첫 임기 동안 부통령을 지낸 에이런 버는 제퍼슨의 정적으로,  제퍼슨은 그를 반역죄로 기소할 정도로 두 사람은 적대적이었다. 당시 정부의 2인자는 부통령이 아니라 국무장관이었다. 연방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제퍼슨은 국내정치와 대외관계는 제임스 매디슨 국무장관에게, 정부 재정은 회계에 밝은 제네바 출신의 앨버트 갤러틴 재무장관에게 맡기고 자기는 책을 읽고 방문객과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하기를 즐겼다. (제퍼슨은 개인 빚을 얻어서 프랑스산 와인을 많이 수입해서 마셨다.) 8년 임기를 마친 제퍼슨은 자기와 같이 버지니아 출신이며 자신의 정치적 동지로서 8년 동안 국무장관을 한 매디슨이 대통령이 된 것을 만족해하면서 고향 샬러츠빌로 돌아왔다.

제임스 매디슨이 8년 임기를 마치자 같은 버지니아 출신으로 국무장관이던 제임스 먼로가 매디슨을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매디슨과 먼로의 관계는 제퍼슨과 매디슨과는 달랐다. 매디슨은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바다를 건너 워싱턴으로 쳐들어온 영국군에 의해 대통령 관저와 의사당이 불에 타는 수난을 겪었는데, 그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전쟁장관을 겸임했던 국무장관 제임스 먼로였다. 영국과의 전쟁을 수습한 제임스 먼로는 사실상 상대방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에 두 번 당선됐다. 이렇게 해서 제퍼슨, 매디슨, 그리고 먼로로 이어 지는 버지니아 왕조(Virginia Dynasty : 버지니아 농장주 출신이 연거푸 대통령이 돼서 이렇게 부름)의 공화파(공화민주당으로도 부름) 정권이 24년간 유지됐다. 

제임스 먼로의 두 번째 임기 중 국무장관이던 존 퀸시 애담스는 제임스 먼로의 뒤를 이어서 대통령이 됐지만 1824년 대선은 혼란스러웠고, 4년 후 선거에서 퀸시 애담스는 앤드류 잭슨에 패배하고 말았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중 부통령을 지낸 마틴 반 뷰런은 부통령으로 대선에 나가서 승리해서 대통령이 됐다. 앤드류 잭슨은 연임에 성공했고 두 번째 임기 4년 동안 부통령이던 반 뷰런이 잭슨에 이어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외에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대통령이 암살되거나 병사하거나 닉슨처럼 사퇴해서 승계한 경우였다. 20세기 들어서, 공화당 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캘빈 쿨리지는 맥킨리와 하딩이 사망해서 승계한 후 다음 선거에 당선됐다. 민주당 부통령이던 해리 트루먼과 린든 존슨은 루스벨트와 케네디가 사망해서 승계한 후 다음 선거에 당선됐다. 부통령을 지내고 몇 년 세월이 흘러간 후에 다시 도전해서 대통령이 된 경우는 리차드 닉슨과 조 바이든이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이 연임해서 8년간 재임하고, 그 아래에서 8년 동안 부통령을 한 사람이 곧장 이어서 대통령이 된 경우는 (간접선거 시대였던 조지 워싱턴과 존 애담스를 제외하면) 로널드 레이건과 그를 이은 조지 H. W. 부시가 유일하다. 그래서 조지 H. W. 부시가 4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9년 1월 20일은 공화당 최고의 날이었다. (공화당 최악의 날은 바로 트럼프가 깽판을 치고 있는 요즈음이다.) 

사진은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의사당 계단을 내려오는 레이건 부부와 부시 부부인데, 레이건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 보인다. 이 날 레이건 부부는 마린 원 헬기로 백악관을 떠나서 고향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레이건과 부시로 이어지는 12년간은 나의 30대였다. 나는 그들의 시대를 살면서 불혹(不惑)의 나이에 도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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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러닝 메이트 제도는 1804년 헌법 수정 12조가 발효해서, 그 해 대선부터 적용됐다. 전적으로 토머스 제퍼슨 덕분이라고 하겠다.  제퍼슨은 존 애담스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 했고, 자기가 대통령 할 때 하원에서 끝까지 자기와 투표로 대립했던 에이런 버 Aaron Burr가 부통령이 되어, 제퍼슨은 부통령이라면 악몽과 같아서 첫 임기 동안 헌법 수정을 통해서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을 뽑도록 했다.
제퍼슨의 최대 정적은 초대 재무장관을 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는데, 제퍼슨이 하원에서 37차에 걸친 투표끝에 간신히 에이런 버를 누르게 된 배경에 해밀턴이 있다고 생각한 버는 해밀턴에 결투를 신청하고, 결투 끝에 해밀턴은 사망한다.  그 결투가 살인이라고 제퍼슨이 기소하라고 명하니까 버는 멀리 도망가서 반란을 도모하다가 이를 본 제퍼슨이 반역죄로 기소하라고 명령했지만 그 기소는 실패하고 말았다.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미국 건국 초에 있었던 셈이다.

 애담스와 제퍼슨은 그 후 한참 후에 화해해서 서로 서신을 교류했는데, 마국 독립 50주년인 1826년 7월 4일 같은 날에 사망했다.  두 사람 모두 독립 50주년이 되는 7월 4일 축하의 종 소리를 듣고 눈을 감으려고 버티다가 종 소리를 듣고 운명한 것이다. 애담스는 제퍼슨은 아직 살아있겠지, 하고 눈을 감았는데 제퍼슨은 조금 먼저 딸 마샤의 손을 잡고 운명했다. 제임스 먼로도 몇년 후 7월 4일에 눈을 감았다. 독립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해 죽을 뻔 했던 먼로에게도 7월 4일은 물론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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