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엘리자베스 홀츠먼 (1941~ )
작성일 : 2021-02-15 19:40조회 : 40


엘리자베스 홀츠먼 (1941~ )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20대 시절에 있었던 일이 강력하게 뇌리(腦裏)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사람이 20대를 넘어서 30대 중반에 이르면 그 후론 바꾸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하다. 미국 정치와 세계 정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베트남 전쟁과 1972년 대통령 선거,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학과 대학원을 다닐 무렵의 관심사였다.

워터게이트는 미국 헌법과 정치/사법 제도의 모든 분야가 결부된 사건이라서 나는 타임지는 물론이고 AFKN 뉴스를 통해서 그 진행을 지켜보았고, 대학원 입학 후에는 대법원 판결문과 관련 논문을 읽었다. 미국 하원이 닉슨에 대한 탄핵절차를 시작한 때는 1973년 10월이었는데, 당시 나는 대학 4학년이었다. 닉슨이 하버드 로스쿨의 저명한 헌법/노동법 교수로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를 하던 아치볼드 콕스(Archibald Cox : 1912~2004)를 주말에 파면하자 하원은 탄핵 절차를 개시했다. (콕스 교수는 나의 영웅이었다. 대학원 시절 나는 그의 책을 탐독했다.)

당시 하원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소속 피터 로디노(Peter Rodino : 1909~2005) 의원으로 은발의 신사였다. 나의 주목을 끈 법사위원은 엘리자베스 홀츠먼(Elizabeth Holtzman : 1941~ )이란 젊고 매력적인 여자 의원이었다. 홀츠먼은 1972년 선거에서 파란을 몰고 당선된 초선의원으로,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인 31세로 의원으로 당선된 기록을 갖고 있었다. 리차드 닉슨이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에 대해 압승을 거둔 1972년 선거에서 뉴욕 하원선거에서 승리한 홀즈먼이 주목을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변호사와 교수인 유태인 부모에서 태어난 홀즈먼은 라드클리프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를 잠시 하다가 뉴욕시장실에서 일하면서 민주당 정당활동과 여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녀는 1972년 브루클린 지역 하원의원 후보 예비선거에서 25선 하원의원이며 하원 법사위원장이던 에마뉴얼 셀러(Emanuel Celler : 1888~1981. 이름과는 달리 남자다)를 근소한 차이로 이겨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샀다. 유태인과 소수인종이 많이 사는 지역구이기 때문에 본선에선 공화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하원에 진입했는데,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홀츠먼은 하원에 들어가자마자 닉슨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폭격하는 조치는 불법이라면서 국방장관을 상대로 폭격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비록 대법원에서 패배했지만 그녀가 제기해서 나온 Schlesinger v. Holtzman 판결은 미국 헌법 교과서에도 나온다. 하원 법사위 위원으로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앞장선 홀츠먼은 1974년, 76년, 78년에 연거푸 당선되었다. 그녀는 남녀동권헌법수정안(ERA) 통과를 주장했고, 나치 전범을 추방하는 법률을 제안해서 통과시켰다.

전국적 명성을 얻은 홀츠먼은 1980년에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워낙 급진적이라서 뉴욕의 민주당 지도부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예비선거에서 당당하게 승리해서 민주당 후보가 됐다. 그런데 공화당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현역인 공화당 진보파 상원의원 제이콥 제비츠(Jacob Javits : 1904~1986)가 보수성향인 알폰소 다마토(Alfonso D'Amato : 1937~)에게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러자 제비츠가 제3후보로 출마해서 유태인 표와 진보층 표가 분열되어서 다마토가 당선된 것이다. 홀츠먼은 다마토에게 1%라는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주도하는 보수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1980년 선거는 존 앤더슨 하원의원이 탈당해서 대선에 제3후보로 나가고, 제이콥 제비츠가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공화당내의 진보파가 절멸한 선거였다. 제비츠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홀츠먼이 상원의원이 되어서 미국 정치의 판도를 바꿀만한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했을 수도 있었으니 아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홀츠먼은 전국적 뉴스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 뉴욕시 브루클린을 포함하는 킹스 카운티 지검장, 뉴욕시 감사관으로 선출되어서 일했으나 70년대의 영광을 찾지는 못했고, 상원 선거에 다시 나가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로는 변호사를 하면서 MSNBC 등에 간간히 나왔고,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긴 기고문을 발표해서 주목을 샀고, 트럼프가 당선되자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책을 펴냈다. 그녀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데 독신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진정한 여권주의자는 힐러리가 아니라 홀츠먼이었다. 힐러리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 법무장관과 주지사를 할 때 주정부 관련 일을 도맡아 하던 로펌에서 일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힐러리는 여권주의자인척 했지만 남편 덕분에 변호사를 했고, 또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하고 대선후보까지 올라 간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들어서 앤 코울터(Ann Coulter), 로라 잉그레이엄(Laura Ingraham) 등 여성 보수 평론가들이 힐러리를 위선자라고 20년 동안 비판을 퍼부어서 결국 백악관 문턱에서 좌절시키는데 성공했다.

홀츠먼이 1973년에 세운 31세 최연소 의원 기록은 2014년 선거에서 뉴욕 북부에서 공화당 후보로 30세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엘리즈 스테파니크(Elise Stefanik : 1984~)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스테파니크는 작년에도 당선되어 4선 하원의원이 됐는데, 하버드를 졸업했고 조지 W. 부시 백악관 비서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30대 초 젊은 하원의원으로 닉슨을 탄핵해야 한다고 당당했던 나섰던 홀츠먼이 이제 80세가 됐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70세가 되었고..)
사진은, - 닉슨 탄핵을 논의하던 하원 법사위 시절에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이던 제랄드 포드와 악수하는 모습, 뒤편에 피터 로디노 법사위원장이 보인다.
- 초선 의원 시절의 홀츠먼과,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고 TV에 나온 근래의 홀츠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