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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워터게이트 특검팀
작성일 : 2021-02-15 19:41조회 : 39


워터게이트 특검팀 

1973년 가을, 닉슨에 대한 탄핵을 다루던 하원 법사위원회에선 30세를 갓 넘긴 엘리자베스 홀츠먼 의원이 맹활약을 했다면, 워터게이트 특검팀에서는 30세를 갓 넘긴 리차드 벤-베니스트(Richard Ben-Veniste ;1943~)와 질 와인 볼너(Jill Wine Volner :1943~)가 맹활약을 했다. 두 사람은 컬럼비아 로스쿨 입학동기인데, 질 볼너는 한해 휴학을 해서 졸업이 1년 늦었다. 벤-베니스트는 당시 유행하던 더벅머리 장발(長髮)이었고, 질 볼너는 법정에 미니스커트와 롱부츠 차림으로 나와서 화제가 됐다. (나는 당시 두 사람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1973년 5월, 워터게이트 의혹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닉슨 대통령은 법무장관을 경질하고 국방장관이던 엘리옷 리차드슨(Elliot Richardson :1920~1999)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리차드슨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워터게이트 의혹을 수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리차드슨은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며 케네디-존슨 행정부에서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을 지낸 아치볼드 콕스(Archibald Cox:1912~2004)를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로 임명했다. 콕스는 유명한 형사 변호사인 제임스 닐(James F. Neal : 1928~2010)을 차석특검으로 영입하고 동료교수에게 특검보(補)로 일을 할 스태프를 구하도록 부탁했다. 그 교수는 인맥을 동원해서 추천을 받았는데, 맨해튼 지역 연방지검 검사로 있던 벤-베니스트와 법무부 조직범죄부에서 일하던 질 볼너를 채용했다.

상원 청문회를 통해서 닉슨이 백악관 집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해서 모든 대화를 녹음해 놓았음이 밝혀지자 콕스 특별검사는 워터게이트 사건 기간 중 백악관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0월 19일, 닉슨은 발췌한 녹음테이프를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콕스는 테이프 전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화가 난 닉슨이 다음날인 토요일 리차드슨 법무장관에게 콕스를 파면하라고 명령했다. 리차드슨 장관은 이에 반발해서 사표를 냈고, 법무부 2인자인 윌리엄 러클샤우스(William Ruckelshaus :1931~2015) 차관도 사임했다. 그러자 3인자인 로버트 보크(Robert Bork :1927~2012) 송무차관이 대통령은 해임권이 있다면서 콕스를 해임했다. 이것이 '토요일 밤 대학살' (Saturday Night Massacre)이다. 콕스는 물론이고 물러난 리차드슨 장관과 러클샤우스 차관도 모두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어서 하버드 로스쿨이 학살당한 모습이었다. 열흘 후 하원 법사위원회는 닉슨에 대한 탄핵 절차를 개시했다.

닉슨은 후임 특검으로 텍사스의 저명한 변호사 레온 자워스키(Leon Jaworski : 1905~1982)를 임명했다. 자워스키도 콕스가 하던 대로 녹음 테이프 전체를 제출하도록 닉슨에게 요구하자 닉슨은 거부했고, 자워스키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해서 이 사안을 다루어 주도록 요청했다. 대법원은 1974년 7월 8일에 구두변론을 했고 7월 24일 전원일치 판결로 녹음 테이프 전체를 제출하도록 판결했다. 이렇게 제출된 녹음 테이프 중 가장 중요한 1972년 6월 23일자 테이프에는 18분 30초 동안이 지워져 있었다. 

1974년 7월 27일~30일간 하원 법사위원회는 표결 끝에 사법방해, 권력남용, 의회모독 3건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하원 운영위원회는 8월 19일부터 본회의에서 탄핵안 토론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8월 8일, 공화당 원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 상원의원이 상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대동하고 백악관을 방문해서 닉슨에게 “미국과 공화당을 위해 사임하라”고 통보했고, 그 다음 날 닉슨은 사임을 발표했다. 

닉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존 미첼,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밥 할데먼과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존 얼릭먼 등은 특검 팀에 의해 진행된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노련한 변호사인 제임스 닐은 백악관 법률고문이던 존 딘(John Dean :1938~)과 무죄협상을 이루어서 닉슨 탄핵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 특검팀을 떠났다. 그 후 실제 법정에서의 신문(訊問)은 벤 베니스트와 질 볼너가 이끌었다. 여자 검사가 매우 드문 시절이어서 질 볼너는 법정에 출두하는 패션이 큰 관심을 끌었다. 

18분 30초 동안 지워진 녹음 테이프에 대해 닉슨의 비서이던 로즈 메리 우즈(Rose Mary Woods :1917-2005)를 상대로 한 질 볼너의 신문은 유명했다. 닉슨이 상원의원을 할 때부터 비서를 지낸 우즈는 전화를 받느냐고 몸을 뒤로 늘리다가 발로 녹음기 삭제 버튼을 우연히 눌렀다고 진술했는데, 질 볼너는 집중적으로 몰아 붙여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지워진 18분 30초에는 닉슨이 할데먼 비서실장에게 은폐를 지시하는 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녹음 테이프는 우즈가 지웠을 가능성이 크지만 우즈는 사망할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비서생활을 하다가 상원의원 닉슨을 만나서 닉슨의 비서를 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산 우즈는 “닉슨이란 사람을 만나서 자기 인생이 가치가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벤-베니스트는 그 후에 성공적인 변호사로 활동했다. 역사적인 워터게이트 재판에 미니스커트와 롱부츠 차림으로 나왔던 질 볼너는 카터 행정부에서 육군 법률고문을 지냈고 몇몇 기업의 임원을 지냈다. 첫 남편과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 뱅크스와 결혼해서 이름이 질 와인 뱅크스로 바뀌었는데, 그녀는 작년에 ‘The Watergate Girl'이란 회고록을 펴냈다. 이들도 이제 80세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 법정에 출석하는 벤-베니스트, 질 볼너, 그리고 제임스 닐 특검팀
- 유명한 질 볼너의 패션
- 질 와인-뱅크스의 근황과 그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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