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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워터게이트, 그 후
작성일 : 2021-02-17 06:56조회 : 205


워터게이트, 그 후

워터게이트와 관련된 인사들은 그 후 각각의 길을 걸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행로를 보면 아래와 같다.

- 아치볼드 콕스 (Archibald Cox:1912~2004)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아치볼드 콕스는 모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쳤는데, 1960년 대선 때 존 F. 케네디를 위해 노동정책을 자문한 인연으로 법무부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해서 소송을 진행하는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에 임명되어서 1965년 7월까지 재직했다. 그는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콕스는 선거구 인구평등 등 워렌 대법원이 다루어야 했던 중요한 사건에서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개진해서 개혁을 추구한 워렌 대법원을 지지했다, 그는 그런 경험을 담아서 <The Warren Court>(1968)를 펴냈다.

변호사를 임명하던 송무차관에 대학교수를 임명하기는 케네디가 처음이었고, 그 후에 송무차관에는 저명한 교수들이 연이어 임명됐다. 송무차관을 물러난 콕스는 하버드로 복귀했으며, 후임으로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던 어윈 그리스월드(Erwin Griswold : 1904~1994)가 임명됐다.

엘리옷 리차드슨 법무장관이 콕스를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로 임명하자 닉슨 대통령은 ‘케네디의 사람’인 콕스를 임명한 것 자체가 자기를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특별검사에서 해임 된 후는 하버드로 복귀해서 헌법을 가르쳤고 수많은 대학에서 초빙강연을 했다. 그는 1984년에 정년을 넘겨서 하버드에서 은퇴했고 그 후에도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 엘리옷 리차드슨 (Elliot Richardson :1920~1999)

리차드슨은 보스턴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나서 하버드를 나온 동부 엘리트였다. 2차 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와 검사로 일하다가 공화당원으로서 매사추세츠 주 부지사와 법무장관을 자냈다. 1968년 대선 때 닉슨을 도운 인연으로 닉슨은 그를 국무차관보에 임명했고 2년 후에는 보건교육후생장관에 임명했다. 1973년 1월,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백악관 보좌관으로 옮기자 닉슨은 리차드슨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그해 5월,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리차드 클라인딘스트 법무장관이 물러나자 닉슨은 리차드슨을 법무장관에 임명했으나 닉슨이 워터게이트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파면하라고 지시하자 사임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970~73년 동안 3개 부처 장관을 역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닉슨이 사임한 후 대통령이 된 제랄드  포드는 리차드슨을 주영 대사로 임명했고 1976년 2월 내각개편 때 상무장관에 임명했다. 이로써 그는 4개 부처 장관을 역임하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카터 대통령은 그를 유엔해양법회의 대표로 임명했고 그는 1980년까지 미국 대표단을 이끌면서 협약안 타결을 이루었다. 그러나 1981년에 들어선 레이건 행정부는 그가 이루어 놓은 해양법 협약안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미국은 아직도 그 협약에 대한 체약국이 아니다. 그 후 그는 변호사 업무를 했다.

- 로버트 보크 (Robert Bork :1927~2012)

시카고 대학을 나온 로버트 보크는 변호사를 하다가 1962년에 예일대 로스쿨 헌법교수가 됐다, 그는 헌법을 시대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엄격해석론자로서 보수적 성향의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1973년 3월, 닉슨 대통령은 어윈 그리스월드의 후임으로 보크를 송무차관에 임명했다. 그 해 10월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파면한 ‘토요일 밤 대학살’로 유명해 졌고,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자 사임했다.

1981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로버트 보크를 DC 소재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고 상원은 전원일치로 인준에 동의했다. 1987년 7월, 루이스 파월 대법관이 은퇴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로버트 보크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레이건은 보크가 항소법원 판사로 무난히 인준되었기 때문에 대법관으로도 무난하게 인준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상원 법사위에서 에드워드 케네드, 조 바이든 등 민주당 의원들은 보크의 지나친 보수성향을 문제 삼아 인신공격을 퍼부어서 상원 본회의에서 58대 42로 부결되었다. 이에 실망한 보크는 이듬해 항소법원 판사직을 사임했다. 그 후 그는 대학에서의 강의와 강연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가 대법관이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14년 전에 그가 아치볼드 콕스를 파면했기 때문이었다.
 
- 레온 자워스키 (Leon Jaworski :1905~1982)

텍사스 출신의 민주당원으로 존슨 대통령과 절친했던 레온 자워스키는 1968년 대선에선 닉슨 대통령을 지지했다.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로서 명성이 높아진 그는 다시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1976년 가을, 한국 정부의 로비스트인 박동선이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 하원의원 여러 명에게 현금 다발을 건넸다는 의혹이 일자 하원 윤리위원회는 이듬해 특별조사관으로 레온 자워스키를 임명해서 이를 조사하기로 했다. 의회가 외부인사를 특별조사관으로 임명해서 의원들의 비리를 조사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고, 레온 자워스키 정도는 되어야 공정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자워스키가 조사한 결과에 의해 상당수 의원들이 박동선으로부터 현금을 받았음이 드러나서 징계를 당했고 하원은 윤리기준을 강화했다. 이 사건을 ‘코리아 게이트’라고 부르며, 미국 하원에서 이 문제 등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내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 졌고 이는 결국 10.26 사태가 발생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 사진은, 콕스, 리차드슨, 보크, 자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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