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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JFK를 죽였나 ?
작성일 : 2021-03-07 15:08조회 : 46


누가 JFK를 죽였나 ?

노터댐 로스쿨 교수를 지낸 G. 로버트 블래키(G. Robert Blakey :1936~ )는 조직범죄와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다룬 의회 위원회에서 자문을 하면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60년 노터댐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법무부 조직범죄 부서에서 일했다. 당시 법무장관은 로버트 케네디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장관을 그만두자 그는 모교 교수가 되어서 형법을 가르쳤다. 

1969년 상원 법사위 형사법 소위가 조직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입법을 준비하자 자문관으로 참여해서 RICO(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s Act) 법안을 기초했다. 그가 기초한 법안을 상하원을 통과했고 닉슨 대통령이 서명해서 1970년에 발효했다. 이 법은 ‘1970년 조직범죄단속법’이라고도 불린다. RICO는 살인 같은 마피아 개개인의 범죄 뿐 아니라 갈취, 공모 등 마피아 범죄와 연결된 조직 그 자체를 범죄로 규정해서 중형을 가하도록 했고, 이를 위해 수사기관이 감청(監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 중반, 뉴욕시를 관할하는 연방지검장 루디 줄리아니는 RICO에 근거해서 마피아 5개 패밀리 보스를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뉴욕을 장악했던 마피아 조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RICO는 조직범죄 뿐 아니라 기업범죄에 대해서도 적용이 되는 등 미국 형사법 집행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RICO가 의회를 통과하자 블래키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77년 하원 암살조사특별위원회(HR Special Committee on the Assassination)가 구성되자 그는 특위 실무를 책임지는 국장이 되어 존 F. 케네디 암살을 다시 들어다 보게 됐다. 1979년에 특위가 끝나자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특위는 간단한 보고서를 냈고, 제출된 자료는 기밀자료로 분류해서 공개되지 않았다.

블래키 교수는 몇 년 후 케네디 암살에 대한 책을 냈고, 몇 차례 강연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워렌 위원회의 보고서는 오스월드를 단독범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식으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회의 조사에 대해 CIA가 대단히 비협조적이었다고 했으나 FBI로부터는 많은 자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케네디 암살에 소련과  쿠바가 개입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하고, 마피아 개입설은 개연성이 크다고 보았다.

FBI는 마피아 보스들을 광범위하게 불법적으로 도청했다는데, 이들은 전화를 하면서 케네디 형제를 죽여 버려야 한다는 말을 흔히 했고, FBI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피아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을 암살했다가는 그 대가가 너무 클 것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고 한다. 블래키 교수는 시카고 마피아 보스였던 샘 지앙카나(Samuel Giancana 1908~1975)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이 없다고 보았다.

자앙카나는 1960년 대선 당시 시카고에서 대규모  부정선거를 감행해서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기여했고, 그의 정부(情婦)가 케네디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기도 했다. 지앙카나는 법정모욕으로 1년간 복역하고 나온 후 자택에서 총을 맞고 살해되었다. 이를 두고 CIA가 죽였다는 설도 있으나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산토 트라피칸트(Santo Trafficante, Jr : 1914~1987)가 살해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마피아는 자신들이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었는데,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을 시켜서 자신들을 조여오자 배신감을 느꼈고, 더구나 1964년에 케네디는 재선이 유력했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블래키 교수는 마피아가 공식적으로 케네디를 암살하려고 결정하지는 않았으나 플로리다 보스인 산토 트라피칸트가 뉴올리언스 보스 칼로스 마르셀로(Carlos Marcello : 1910~1993)와 의논해서 암살을 지시했을 것으로 보았다. 리 하비 오스월드가 뉴올리언스를 자주 들락거렸고 마르셀로는 오스월드를 살해한 재크 루비와도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이들이 케네디 암살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산토 트래피칸트는 죽음을 앞두고 "로버트를 죽여야 하는데 마르셀로가 지오반니를 잡아서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지오반니’는 이태리어로 ‘존’을 의미하니까 케네디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다. 블래키 교수는 당시 뉴올리언스는 그곳에 주재하는 CIA 요원마저 무능했거나 마르셀로에 넘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댈러스는 물론이고 뉴올리언스도 케네디에게 적대적이었을 뿐더러 허술했다는 것이다.

블래키 교수는 오스월드가 그 역할을 하도록 세워진 인물이라고 보았다. 2012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당시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장관이었는데, 왜 자기 형이자 대통령을 죽인 마피아를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 당시 법무부에 있었던 블래키 교수는 “마피아는 케네디 암살로 이득을 얻는 하나의 구성원(one element)이었고 조직범죄를 수사하는 연방정부 기구는 몰락해 버렸다”고 답했다. 말하자면,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자, 마피아 뿐 아니라 존슨 부통령도 좋아 했고, CIA, FBI, 그리고 군부도 모두 좋아했다는 이야기이다. 케네디 암살을 두고선 온갖 추리가 많지만 블래키 교수는 의회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책임졌던 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무게감이 실리는 것이다.

댈러스에서 케네디가 저격을 당하자 FBI 에드가 후버 국장은 로버트 케네디에게 전화를 걸어서 “The President was shot."라고 알려주고 끊어 버렸다. 후버는 얼마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The President is dead."라고 알리고 전화를 끊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 전화를 받고 바닥에 주저 않아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남편의 피와 뇌수(腦髓)가 묻어 있는 암살 당일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남편의 시신을 실은 전용기 편으로 워싱턴에 돌아와서 트랩을 내렸다. 케네디 형제를 둘러싼 적대적 분위기를 알고 있는 재클린이 미국민을 향해서 이들이 한 일을 보라고 의도적으로 피로 얼룩진 옷을 그대로 입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재키는 자기 남편과 시동생을 둘러싼 위험한 분위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블래키 교수.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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