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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케네디, 쿠바, 마피아
작성일 : 2021-03-07 15:48조회 : 41


케네디, 쿠바, 마피아

2007~08년에 <월간조선>에 현대사 탐구 시리즈를 연재한 적이 있다. 새로 발간된 책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사. 그러나 우리는 간과해 버린 역사를 다루었던 지면이었다. 쿠바에 관한 글을 다섯 번 낸 적이 있는데, 아래에 올린 <아바나 야상곡>이 가장 흥미롭다. 이 책은 산토 트라피칸트, 마이어 랜스키 등 마피아 보스들이 공산혁명 전 쿠바에 화려한 카지노 호텔을 건설해서 쿠바 바티스타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였지만 카스트로가 일으킨 공산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카스트로와 케네디가 마피아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음은 참으로 운명적이다. 공산 혁명 전 쿠바 아바나는 환락의 도시였고, 젊은 상원의원 존 F. 케네디는 아바나를 자주 찾았다 케네디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 호텔에 묵으면서 향락을 즐겼는데, 그 비용은 물론 마피아가 부담했다. 환락의 도시 아바나와 달리 쿠바의 민생은 피폐해 갔고, 결국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은 아바나에 입성하게 되는데 이들은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 호텔에서 혁명의 성공을 알리는 공식적 회견을 열었다. 산토 트라피칸트와 마이어 랜스키는 간신히 몸만 빠져나갈 수 있엇고, 웅장하고 호화로운 카지노 호텔은 공산정부의 소유물이 되어 버렸다.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쿠바를 자유진영으로 되찾아 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하자 케네디는 그런 구성을 접어 버렸다. 미국은 경제제재로 쿠바를 압박했고, 카스트로는 소련의 군사력을 쿠바에 불러 들어와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켰다.  제3차 대전이 발발할 뻔 했던 위기는 로버트 케네디가 흐루스쵸프와 비공식 채널을 가동해서 회피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전쟁의 위험은 피했지만 마피아는 그들의 카지노 호텔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케네디가 마피아를 배신한 것이다. 더구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장관이 되더니 마피아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대책반을 법무부에 설치해서 마피아는 위협을 느끼게 됐다. 아바나에 투자해서 가장 많은 돈을 잃어버린 마피아의 플로리다 보스인 산토 트라피칸트가 케니디 암살의 배후인물로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FBI와 CIA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케네디 형제를 도무지 좋아하지 않았다. FBI는 대통령과 의회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성역이었다. 케네디는 피그스 만 침공 실패를 이유로 앨런 덜레스 CIA 국장을 해임해서 CIA를 분노케 했다. 이렇게 FBI와 CIA는 케네디 형제와 등을 돌려버렸다.

당시 합참에는 2차 대전 중 도쿄를 네이팜으로 태워 버린 커티스 르메이 대장이 공군참모총장이었는데, 그는 쿠바를 폭격으로 지도에서 없애 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강경파였다. 2차 대전 중 일본 전선에 오기 전에 커티스 르메이는 미 공군 폭격기 전단을 선두에서 이끌면서 독일에 대한 대공습을 감행한 용맹스런 지휘관이었다. 르메이 대장이 보기에 케네디 형제는 비겁한 어린아이들에 불과했다. 1960년 대선에서 쿠바 공산정권을 무너트리겠다고 약속한 것이 케네디에게 부메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이를 조사하기 위한 워렌 위원회에는 케네디가 파면한 앨런 덜레스가 CIA를 대표해서 위원으로 참가했는데, 케네디 암살에 CIA가 연루되는 가능성을 막기 위해 워렌 위원회에 참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케네디의 누이동생 패트리셔의 남편인 피터 로포드는 영화배우였는데, 그는 프랑크 시나트라와 가까웠다, 프랑크 시나트라는 마피아가 경영하는 라스베이거스와 아바나의 카지노 호텔에 자주 출연하는 등 마피아와 유대관계가 돈독했다. 법무장관으로 조직범죄와 싸우던 로버트 케네디는 형과 매부가 마피아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고 고민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케네디의 부친 조셉 케네디는 금주법 시대에 밀주 사업과 주식 사기로 큰 돈을 벌었기 때문에 조직범죄단이 돈을 번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민층 출신으로 학비가 없어서 장학금을 주는 듀크 대학 로스쿨을 나온 닉슨은 졸업 후 로펌은커녕  FBI에도 취직이 안 돼서 고향 남부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 닉슨은 위선적인 케네디 가문과 하버드 출신들을 경멸했지만 그 자신은 나중에 워터게이트로 몰락하고 말았다. 1960년 대선에 출마한 두 사람은 개인적 인생 행로가 어떻든 간에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이 실로 심대하다. 역사는 오늘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사진은 쿠바 아바나 자기의 카지노 호텔에서의 산토 트라피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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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敦 교수의 現代史 탐구] 마피아와 카스트로, 그리고 케네디 : 월간조선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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