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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로버트 케네디와 마피아
작성일 : 2021-03-08 21:08조회 : 39


로버트 케네디와 마피아

미국 법무부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 : 1925~1968)가 법무장관으로 취임한 후에 비로소 마피아 등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면 로버트 케네디는 어떠한 계기로 조직범죄를 법무부의 중요한 과제로 삼게 되었을까 ?

1925년생인 로버트 케네디는 형 존 F. 케네디 보다 8살 아래다. 어릴 때 8살 차이는 크기 때문에 로버트는 형과 큰 교감이 없이 자랐다. 로버트는 하버드와 버지니아 로스쿨을 나온 후 외국여행을 하고 법무부에 잠시 일하다가 1952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형을 도왔다. 그가 형과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 때는 1952년 선거부터였다. 35세로 이미 3선 하원의원인 존 F. 케네디는 1952년 선거에서 공화당 거물 헨리 캐봇 롯지 2세(Henry Cabot Lodge. Jr.: 1892~1985)를 꺾어서 파란을 일으켰다. 존 F. 케네디는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 : 1908~1957) 상원의원과 가까웠고 그런 연유로 로버트 케네디는 1953년부터 54년까지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상원 조사위원회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로버트는 공격적으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매카시가 증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선동적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매카시 상원의원이 1954년 12월에 견책을 당하고 몰락한 후에 로버트 케네디는 조사위원회의 수석자문(Chief Counsel)이 되어서 범죄 에 관한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관계자를 만났다. 이런 과정에서 만난 마약국 조사관이 로버트에게 미국의 마약범죄의 뿌리가 이태리 시실리라고 알려 주어서 그는 이태리계 조직범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에도 이미 조직(racket) 범죄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왔으나 로버트 케네디는 이런 현상이 전국적으로 연결된 것임을 깨달았다. 1956년 대선이 다가오자 로버트는 의회 자문을 그만두고 민주당 후보 애들라이 스티븐슨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

1957년부터 59년까지 로버트 케네디는 노조의 불법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상원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석자문으로 일했다. 존 매클레런(John McClelllan : 1889~1977) 상원의원이 주도하는 이 특위에는 배리 골드워터와 존 F. 케네디가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매클레런 위원장은 로버트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서 특위를 운영하도록 했다. 이 때 로버트 케네디는 운수노조가 주축이 되어 있는 팀스터 유니언(Teamsters Union)을 강력하게 추궁했는데, 특히 지미 호파를 신랄하게 추궁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위원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지미 호파가 다투는 모습은 TV로 중계되어서 널리 알려졌다.

196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형 존 F. 케네디 캠프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로버트는 케네디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로버트는 국무장관에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을 추천했지만 아칸소 출신인 풀브라이트 의원은 인종 평등 등 민권에 소극적이라서 국무장관이 될 수 없었고, 국무장관 자리는 무색무취한 딘 러스크에게 돌아갔다. 로버트는 국방차관을 하고 싶었는데, 국방장관이 될 로버트 맥나마라는 대통령의 동생을 차관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리비코프 주지사와 애들라이 스티븐슨에게 법무장관직을 제안했지만 두 사람은 고사(固辭)했다. 그러자 부친인 조셉 케네디는 로버트에게 법무장관을 맡으라고 밀어 붙였고,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의회 자문역 이외에는 별다른 경력이 없는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임명하자 비난이 일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이 법무장관으로서 경력을 쌓을 것”이라고 유머로 넘겼다. 로버트는 법무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조직범죄 대응부서 인력을 60명으로 늘리고 우수한 변호사들을 채용했다. 로버트는 지미 호파를 잡기 위한 특별반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케네디 법무부에선 조직범죄 수사가 중요한 업무가 됐다.

당시 FBI 국장이던 에드가 후버는 공산주의자를 잡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 조직범죄에 대해선 소홀했다. 케네디 장관은 FBI 뿐 아니라 국세청과 마약국 등 유관 연방정부기관과 협력해서 조직범죄에 대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후광(後光) 때문에 평소에는 협조가 되지 않던 연방수사기관이 법무부 지휘 하에 긴밀하게 협력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시카고 마피아의 하부 조직원들이 검거되고 켄터키 뉴포트의 불법도박단이 체포되는 등 효과가 나타났다. 로버트는 상원으로 하여금 주간(州間)범죄방지법(The Interstate Anti-Crime Act)를 제정토록 했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로버트는 마피아 중간간부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조셉 발라키(Joseph Valachi : 1904~1971 )를 1963년 10월에 열린 상원 위원회 증언으로 내세우도록 했다. 흔히 ‘발라키 청문회’라고 불리는 이 위원회에 로버트 케네디는 직접 참석해서 머리말을 하기도 했다. 발라키는 마피아의 이태리 명칭이 ‘코사 노스트라’라고 밝혔으며 그 뿌리와 계보에 대해 상세한 증언을 했다. 1931년에 일어난 마란자노(Salvatore Maranzano : 1886~1931)와 마세리아(Giuseppe Masseria :1886~1931) 살해를 럭키 루치아노('Lucky' Luciano:  1897~1962)가 주도했으며 마피아의 최고 보스는 루치아노를 계승한 비토 제노비제(Vito Genovese : 1897~1969)이고 다섯 개의 패밀리가 있다고 밝혔다. 발라키의 증언으로 마피아의 계보와 그간에 있었던 많은 살인사건의 배후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발라키는 연방교도소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발라키의 증언이 있은 후 한 달 만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다. 로버트 케네디는 형이 피살됐다는 전화를 에드가 후버로부터 듣고 자기가 마피아를 몰아 붙여서 그 반작용으로 형이 살해됐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장관직을 반년 동안 더 하고 1964년 선거에서 뉴욕에 출마해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로버트가 법무장관을 그만두자 조직범죄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는 힘을 잃었다.

조셉 발라키가 증언한 내용은 영화 <발라키 페이퍼>(The Valachi Papers : 1972년)에 상세하게 나온다. 찰스 브론손이 조셉 발라키로 나오는 이 영화는 의회 증언을 토대로 한 논픽션 영화이다.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대부>(The Godfather : 1972년)는 마리오 푸조가 발라키의 증언에서 영감(靈感)을 얻어 쓴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미국인들이 마피아를 알게 된 계기는 이 두 영화라고 할 것이다. 발라키를 의회 증언대에 세워서 조직범죄의 실상을 알린 로버트 케네디 덕분에 영화 <대부>가 나온 것이다.
 
-사진은 1957년 상원 조사위원회에서 케네디 형제. 1963년 상원 청문회에 나온 발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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