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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뉴욕 마피아 소탕 작전 : 1985~1987
작성일 : 2021-03-08 21:14조회 : 43


뉴욕 마피아 소탕 작전 : 1985~1987

뉴욕은 가장 부유하고 큰 도시였던 만큼 마피아가 성장한 고향이었고, 뉴욕을 장악하기 위한 마피아 패밀리 간의 다툼은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불러 일으켰다. 초창기 양대 보스였던 마세리아와 마란자로가 럭키 루치아노에 의해 제거되고 루치아노와 비토 제노비제는 뉴욕을 장악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제노비제, 루체즈, 콜롬보, 보나노, 감비노라고 불리는 5개 마피아 패밀리가 성장해서 뉴욕의 지하세계를 장악했다. 1980년 기준으로 뉴욕에는 마피아 5개 패밀리에 1,100명이 속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의 마피아들은 건설업, 쓰레기 수거와 처리, 수산물 시장, 부두 하역작업 등 정상적인 사업에 간여해서 약취(略取)를 일삼았고, 식당 등 일선 사업자로부터 보호 명목으로 돈을 갈취(喝取)하고, 매춘, 고리대금, 마약 등 광범한 불법행위를 해 왔다. 간간히 뉴욕 경찰과 검찰은 마피아 하부조직원을 체포해서 감옥에 보내더라도 간부를 기소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이처럼 수사기관이 살인 등 구체적인 범죄 혐의로 조직원을 체포해도 조직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1970년에 제정된 RICO(조직범죄통제법)는 검찰이 마피아 조직 자체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기소할 수 있게 했고, 또 이를 위해 그 조직을 감청할 수 있도록 했다. 1983년 봄부터 FBI는 RICO에 근거해서 마피아 보스의 자동차, 이들의 회합장소 등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감청을 했다. 장기간 도청을 한 결과 5개 패밀리 보스들은 ‘위원회’(The Commission)라는 조직에서 최고 결정을 하고 있음을 알아내는 등 5개 패밀리의 조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1983년 6월, 법무부 차관보였던 루디 줄리아니(Rudy Guiliani : 1944~ )가 맨해튼을 관장하는 남부 뉴욕 연방지검장으로 임명되어 부임했다. 그 해 8월, 줄리아니는 뉴욕주 조직범죄 대책반 및 FBI 뉴욕지국과 협조해서 RICO에 근거해서 5개 조직 전체 자체를 와해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2년 동안 FBI는 도청을 해가면서 마피아 보스와 언더보스들을 감시하고 증거를 수집했다. FBI 요원들은 케이블 수리공을 가장하고 마피아 보스의 집에 들어가서 도청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영화에서와 달리 그것은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1985년 2월 25일, FBI 뉴욕지부는 무장병력을 동원해서 마피아 보스와 언더보스 9명을 일제히 체포했다. 그 다음 날 루디 줄리아니 연방지검장은 언론에 나와서 이들에 대한 기소 계획을 발표해서 세계의 주목을 샀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1986년 11월 19일까지 계속됐다. 법원의 영장에 의해 이루어진 도청에 의해 마피아 조직이 있으며 이들이 위원회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갖고 있음이 밝혀지자 이들의 변호사는 마피아가 존재라고 있음을 인정하고 다만 마피아 조직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범죄가 되는 것을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마피아 측 변호사가 마피아라는 존재가 있음을 처음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드리지 않고 조직 그 자체가 범죄라고 판단했다. 1987년 1월 13일 마피아 보스와 언더보스 7명에 대해선 징역 100년이 확정됐고 나머지 한명에 대해선 40년이 확정되어서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RICO에 의해서 이들은 살인 등 구체적 범죄 입증이 없이 범죄조직을 운영했다는 혐의로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복역 중 사망했다.

2월 25일에 체포됐던 감비노 패밀리 보스인 폴 캐스틸라노는 2백만 달러 보석금을 걸고 석방됐는데. 그는 12월 18일 저녁 맨해튼 한복판에서 레스토랑에 들어가다가 총격을 받고 죽었다. 캐스틸라노를 살해한 3명은 사라져버렸는데, 감비노의 언더 보스인 존 고티가 살해 명령을 내린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존 고티는 감비노 패밀리 보스가 되어 군림했으나 1992년에 다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마피아 위원회 재판’(The Mafia Commission Trial)이라고 불리는 이 재판을 통해서 40대 초의 루디 줄리아니 지검장은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줄리아니는 30대 초의 젊은 검사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 : 1953~ )로 하여금 이 재판을 담당하도록 했다. 마피아 보스들에게 징역 100년형을 받아낸 처토프 검사도 유명인사가 됐다.

줄리아니는 연방검사로서의 유명세를 기반으로 뉴욕시장을 지냈으나, 말년에 트럼프의 변호사를 지내는 바람에 젊은 날에 쌓았던 명성을 몽땅 잃어 버렸다. 줄리아니의 몰락을 보면, 사람은 끝이 아름다워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버드 로스쿨은 나온 마이클 쳐토프는 그 후 뉴저지 관할 연방지검장과 법무부 형사부장,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냈다.

- 사진은 마피아 재판을 승리로 이끈 루디 줄리아니(뒤 중앙)와 마이클 쳐토프 검사(앞 중앙) 등 검찰 팀. 198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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