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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리아 에스테판 부부
작성일 : 2021-03-12 11:23조회 : 33


글로리아 에스테판 부부

2016년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가 90세로 사망하자 마이애미에 사는 쿠바계 미국인들은 시내에 몰려나와서 축제 분위기로 환호했다. 이날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은 SNS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의 죽음은 축하할 이유가 되지는 않지만, 그(카스트로)가 옹호해온 파괴적 이념의 상징적 사망이라는 점에서, 쿠바 망명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과 구원이 다가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Although the death of a human being is rarely cause for celebration, it is the symbolic death of the destructive ideologies that he espoused that, I believe, is filling the Cuban exile community with renewed hope and a relief that has been long in coming.")

그녀의 남편 에밀리오는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사망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 싸울 용기를 가졌던 2506 여단 대원과 그들의 가족, 헤어진 가족, 플로리다 해협에서 죽은 사람들, - -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 - - , (카스트로의 죽음은) 우리가 사랑하는 쿠바에 희망을 열어주는 아침이 될 것이다”고 했다. ‘2506 여단’은 피그스 만 침공에 참전했던 쿠바 망명인 부대 명칭이다. 

대학 1학년이던 글로리아를 만나게 된 에밀리오는 글로리아에게 자기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도록 했으며, 글로리아는 템포가 빠른 음악에 맞추어 춤을 배우고 발전시켰다고 한다. 에밀리오는 럼주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밴드를 했고, 글로리아는 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에 공연을 했다. 그 때는 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음악을 했을 것이다. 글로리아가 대학을 졸업하게 될 무렵에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그 후 두 사람은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밴드에 전념해서 점차 유명해 졌으며 1984년부터 앨범이 히트를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가까워 질 수로 초기의 라틴 댄스 뮤직을 벗어나서 발라드 음악을 하게 됐고, 글로리아는 세계적 스타가 됐다.

1953년생인 에밀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은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1967년 그는 간신히 쿠바를 벗어나서 스페인을 거쳐서 마이애미로 들어왔다. 그의 가족이 모두 마이애미로 오게 된 것은 1971년이라고 한다. 카스트로 통치를 겪었던 에밀리오는 자유와 번영에 대한 갈구가 1살 때 부모 품에 안겨 마이애미로 온 글로리아 보다 컸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쿠바를 떠나온 두 가족은 마이애미에서 맨손으로 삶을 시작해야 했고, 그것은 마이애미에 정착한 다른 쿠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밀리오는 이런 과정에서 대학은 다니지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사업 수완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밀리오는 밴드가 제 궤도에 오르자 더 이상 키보드를 하지 않고 매네이저로 경영을 했다.
 
내가 마이애미에서 공부한 때는 1980~1981년이니까 카스트로 공산혁명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후였다. 마이애미에 정착한 쿠바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강인한 생활력으로 스스로 일어섰다. 로스쿨에도 쿠바계 학생이 꽤 있었는데, 이들은 자기들끼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당시에도 마이애미 다운타운에는 ‘리틀 아바나’라고 부르는 쿠바 출신들이 모여서 장사를 하는 지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가게 입구에 “우리는 영어를 합니다”(We Speak English.)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스페인어를 쓰지만 영어도 하니까 안심하고 들어오라”는 뜻이다. 다른 대도시 상점에 중남미 고객을 위해서 “우리는 스페인어를 합니다”(Se Habla Espanol.)라는 팻말을 붙여 놓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카스트로 공산혁명을 피해서 마이애미로 일찍 망명한 사람들은 교육을 받은 중산층이기 때문에 비록 빈손으로 마이애미에 도착했어도 열심히 일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을 배신한 민주당 정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피그스 만에 침공하면 미 공군을 보내서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케네디 대통령을 잊지 않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에서 승리하게 된 것도 쿠바계 유권자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코로나가 잠잠해 지면 40여 년 만에 마이애미를 다시 가서 많이 번화해 진 도시도 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한 ‘Estefan Kitchen'에서 좋은 시간을 갖고 싶다.   
- 사진은 에스테판 부부의 현재와 45년 전 모습. 글로리아가 자신의 페북에 공개한 사진이다. 스타급 엔터테이너들이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이혼 결혼 여러 번해서 속빈 강정이 되는데, 에스테판 부부는 가정적이고 재산관리를 잘 해서 엄청난 부자가 됐으니, 그것도 정말 존경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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