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Paradise Lost ?
작성일 : 2021-03-18 08:21조회 : 36


“Paradise Lost" ?

1970년대 후반기부터 미국에선 남부와 남서부로의 인구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제2의 도시이던 시카고는 인구가 줄어들어서 1990년에 LA에 제2의 도시 지위를 내어주었다. 남부를 흔히 선벨트(Sun Belt)라고 불렀는데, 플로리다는 원래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라고 불렸다.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한 남부 플로리다는 1970년대 말부터 중남미에서 들어오는 마리화나와 코카인의 중간기착지가 되어 버렸다. 베트남 전쟁이 끝남에 따라서 미국의 마약은 헤로인에서 코카인으로 바뀌었는데,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코카인과 마리화나가 남부 플로리다를 거쳐서 미국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1978년 8월, 니카라과에선 산디니스트 세력이 독재자 소모사 정권을 무너트리고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등  중남미 정세는 혼란스러웠다. 카터 정부는 인권 문제에 집착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 마이애미에 잠입했다. 

1979년 7월 11일 대낮에 마이애미 남쪽 교외에 있는 데이드랜드 몰 쇼핑센터의 주류 상점에 괴한들이 들이닥쳐서 기관총을 난사해서 두 명을 살해하고 사라진 일이 일어났다. 금주법 시대에 뉴욕과 시카고에 있었던 기관총 살인 사건이 5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코카인 거래를 둘러산 조직 간의 분규 때문에 기관총을 난사하거나 사람의 목을 잘라서 죽이는 일이 마이애미와 그 근교에서 흔히 일어났다. 1980년에 쿠바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어 범죄가 증기된 상황에서 마약 카르텔 범죄가 기승을 부려서 마이애미 검시소에는 시체가 넘쳐서 냉동 트럭을 임시로 안치실로 사용할 정도였다. 2006년에 나온 도큐 영화 <Cocaine Cowboys>, 마이애미에 거점을 두고 콜롬비아 카르텔을 운영한 악명높은 살인마 그리셀다 블랑코(Griselda Blanco : 1943~2012)의 생애를 영화화한  <Cocaine Godmother>(2017)가 모두 1980년 대 초  마이애미를 무대로 한 것이다.

실제로 마이애미에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1949~1993)의 큰 저택이 있었으니 당시 미국의 출입국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1979년 기관총 살인 사건이 있은 후 연방 마약국(DEA)이 마이애미에서 본격적으로 작전을 개시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TV에 코카인을 들고 나와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마약국 요원 뿐 아니라 미 육군 델타 포스를 콜롬비아에 투입해서 콜롬비아 특수부대를 도와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요즈음 케이블에서 나오는 <나르코스>(Narcos)에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코카인은 여전히 멕시코 등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1980년대 초 마이애미가 미국 제1의 살인도시로 이름을 떨칠 적에 거기서 공부를 한 셈이다. 하지만 캠퍼스는 천국처럼 안전해서 살인 소식은 뉴스에서나 접했다. 1981년 11월, 타임지는 <Paradise Lost ?>라는 커버 스토리 기사를 내보냈다. 마이애미, 웨스트 팜비치, 포트 로더데일 등 남부 플로리다가 마약과 범죄, 인종분규로 심각하게 병들어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마이애미에 금융이 번창한 것은 마약 대금이 은행에 흘러가서 돈 세탁을 하기 때문이고,  몇 개 은행은 마약 조직이 설립한 것으로 보이며, 은행 창구에 현금을 뭉텅이로 갖고 와서 맡기기 때문에 마이애미 은행은 현금 보유율이 미국 전체에서 가장 높고, 부동산 거래의 70%가 현금 거래로 이루어지는 등  마약 거래가 마이애미 경제를 살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마이애미의 경제는 그 후 완전히 병들었나 ? 오히려 다른 도시 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 온 지 40년이 지났고 그 동안 미국 여러 도시를 자주 방문했지만 마이애미는 그 동안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의 마이애미는 내가 보았던 40년 전의 마이애미와는 완전히 다른, 활력이 넘치는 번영하는 도시가 되어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 지면 마이애미와 키 웨스트를 다시 들러 보고 싶다.

사진은, 1981년 11월 23일자 타임지 표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