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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우스 비치
작성일 : 2021-03-22 08:27조회 : 27


사우스 비치

봄 방학을 맞아 대학생들이 마이애미 비치에 너무 몰려들어서 시 당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저녁 8시부터 통금 조치를 취했다. 지역 경찰로 감당이 안 되어서 주 경찰(state trooper)이  동원됐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몰려 든 곳은 마이애미 도심에서 다리건너 있는 마이애미 비치의 남쪽인 사우스 비치(South Beach)다.

남부 플로리다는 20세기 들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마이애미 비치도 그러했고, 억만장자들이 모여 사는 팜 비치도 그러했다. 192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진행됐는데, 1926년에 초대형 허리케인이 마이애미를 때려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따라서 1930년대부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마이애미 비치 남쪽 지역 사우스 비치를 개발하던 업자들은 당시 유행이던 아트 데코(Art Deco) 스타일로 나지막한 호텔과 아파트를 건설했다.

대서양을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와 좋은 기후, 그리고 아트 데코 건물 덕분에 1940년대 들어 사우스 비치는 우아한 휴양지로 유명해 졌다. 동북부 부유층이 추운 날씨를 피해서 사우스 비치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고 갔다. 1960년대까지 사우스 비치는 그러한 명성을 이어갔다. 1971년, 플로리다 중부 올란도에 월트 디즈니 월드가 개장을 했다. 아무 것도 없던 중부 플로리다 지역이 디즈니 월드 덕분에 갑자기 번창해 졌다. 마이애미 비치로 향하던 휴양객들이 올란도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서 관광객을 잃어버린 사우스 비치에는 은퇴자들, 특히 유태인 은퇴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니까 관광객들은 뚝 끊어지고 사우스 비치는 활력을 잃어 버렸다. 1930년대에 건설되어 쇠락한 아트 데코 스타일 호텔은 유태인 노인들이 세 들어 사는 아파트로 바뀌어 버렸다.     

1970년대는 오래된 건물을 보전하려는 운동이 한창 일어 날 때였다. 사우스 비치의 아트 데코 건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일어서 1979년에 사우스 비치 지역은 국가적 가치가 있는 역사적 장소(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재됐다. 보존주의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쇠락해 가는 사우스 비치는 재개발을 추진할 인센티브가 없었다. 그 즈음 마이애미에는 콜롬비아 카르텔이 코카인을 들여와서 치안이 나빠졌고 사우스 비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마이애미에 도착한 1980년은 마이애미 도시 역사상 최악의 시점이었다. 흑인을 죽게 한 백인경찰관에 대한 무죄판결로 인해 인종 폭동이 일어난 직후였고, 카스트로가 쿠바 난민을 대거 마이애미로 방출하고 있을 때였다. 콜롬비아 카르텔의 살인자들이 기관총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죽여서 마이애미 경찰 시체실이 총 맞고 죽은 시체로 넘치던 때였다.

그래도 관광 가이드에는 사우스 비치가 아트 데코 건물이 많고 역사적 장소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서, 시간을 내어서 가보았다. 건물은 쇠락했고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이따금 노인들이나 보일 뿐이었다. 고스트 타운(Ghost Town)이었다. 자동차를 세워 놓고 걸어 다닐 기분이 나지 않는 그런 거리였다.

아래 흑백 사진이 1980년 경 사우스 비치의 모습이다. 40년 전에 내가 보았던 사우스 비치가 이러했다. 칼라 사진은 같은 거리의 오늘날 모습이다. 카페와 식당에 사람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면 1980년대 초에 그 모양이던 사우스 비치에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늘날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뜨거운 명소(hot spot)가 되었나 ? 그것은 NBC가 방영한 TV 드라마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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