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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앤드류 멜런과 데이비드 핀리
작성일 : 2021-05-07 10:05조회 : 1,585
앤드류 멜런과 데이비드 핀리
보전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건물이나 자연 지역을 매수해서 보전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영연방 국가는 물론이고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서 관련된 시민단체가 있다. 미국에서 이 운동을 시작해서 발전시킨 사람은 앤드루 멜런(Andrew W. Mellon)을 도와서 National Gallery of Art를 세우고 초대 관장을 지낸 데이비드 핀리(David E. Finley, Jr : 1890~1977)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난 핀리는 아버지가 18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워싱턴에서 로스쿨을 다니면서 변호사 자격을 땄고, 하원의 스태프로 일했다. 부친이 사망하자 세법을 전공한 그는 재무부에 취직했다. 1921년,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고 앤드루 멜런이 재무장관이 되자 핀리는 멜런 장관의 눈에 띠어서 멜런의 연설문을 기초하는 등 멜런의 최측근이 되었다. 세금을 줄여서 경기를 확대시키는 멜런 플랜을 구체화시킨 사람도 데이비드 핀리로 알려질 정도로 그는 멜런 장관의 복심(腹心)이었다. 1920년대 미국에서 대통령 보다 막강한 장관의 막강한 보좌관이었던 셈이다.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많은 멜런의 취향은 보좌관인 핀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멜런은 유럽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은밀한 일을 핀리한테 시켰다. 대공황으로 인해 여론이 좋지 않자 후버 대통령은 멜런을 영국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 멜런은 주영 대사로 가면서 자기 사비로 봉급을 주면서 핀리를 대동하고 부임했다. 영국 주재 대사 임기는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해서 1년 만에 끝이 났고, 멜런과 핀리는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영국에 머물면서 핀리는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섭렵하면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도 미술관이 필요함을 느꼈다.
워싱턴으로 돌아 온 앤드루 멜런은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을 보전할 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에 착수했다. 대공황을 초기에 종식시키는데 실패한 루스벨트 행정부는 멜런을 상대로 탈세 수사를 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하고 철회했다. 그런 상황에서 앤드루 멜런은 역대급 기부인 내서널 갤러리 오브 아트(The National Gallery of Art)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멜런이 자신의 정적(政敵)인 루스벨트에 한 방 먹인 것이다.
멜런이 1937년에 사망하자 핀리는 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서 National Gallery of Art를 완공하고 자신이 아는 미술품 소장가들에게도 기증하도록 권유하는 등 콜렉션을 늘렸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당당한 미술관이 문을 열게 됐다. 핀리는 그림과 조각은 미술관에 보관할 수 있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축물은 현장에서 보존해야 함을 알고 영국에서와 같은 내셔널 트러스트 조직을 발족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역사 보전을 위한 내셔널 트러스트)이 1947년에 발족했고, 핀리는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그는 의회를 움직여서 이 단체가 의회에서 의해 설립되는 기구로 하는 법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의회와 재계에 발이 넓은 핀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많은 기금을 조성했으며, 보전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구매해서 보전하고, 동시에 회원을 확충해서 역사적 건물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핀리는 1961년에 이사장에서 은퇴했으나 1977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사회에 참석하는 등 운동에 헌신했다. 오늘날 이 단체는 역사 유적 보전에 관한 최대의 시민단체이다.
데이비드 핀리의 큰 업적으로 꼽는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서 철거하기로 되어 있던 구 특허청 건물(Old Patent Office Building)을 보존하고 리모델링해서 초상화 미술관(The National Portrait Gallery)으로 1968년에 문을 열게 한 일이다. 런던에 그런 미술관이 있음을 눈여겨 본 핀리가 워싱턴 DC에도 초상화 미술관을 세우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오늘날 이 미술관은 역대 대통령 초상화 등 미국의 역사 인물의 유명 초상화를 전시 보관하고 있다.
핀리가 이끌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닥친 큰 시련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던 펜 스테이션(Penn Station) 역사(驛舍) 철거를 막지 못한 일이었다. 철도 여객이 줄어들자 1910년에 세워진 우아한 펜 스테이션 역의 지상부분을 철거하고 고층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이 1962년에 발표되었는데, 대기업 오너 등 재산가들이 많이 참여한 핀리의 내셔널 트러스트는 이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지도 못했다. 펜 스테이션 건물은 철거되었고 지상에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섰으며, 오늘날 앰트랙을 타는 사람은 건물 지하역을 이용하게 되었다. 맨해튼의 또 다른 오래된 역사(驛舍)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도 몇 년 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자 이를 보전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맨해튼에 살고 있던 재클린 케네디가 앞장서서 보전을 주장하자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됐고, 그 문제는 법정 다툼으로 번져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유명한 판결로 보전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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