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셀 커크와 보수주의 10계명

작성일 : 2008-08-11 05:45조회 : 4,099

러셀 커크와 ‘보수주의 10계명’

이상돈 (2008년 5월 10일)

러셀 커크(Russell Kirk : 1918-1994)는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이며 이념 운동가이다.

1918년 미시건 주(州) 농촌의 빈한한 가정에서 출생한 러셀 커크는 그의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커크는 미시건 주립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의 전신인 미시건 농업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다. 커크의 청소년 시절은 어머니의 사망과 부친의 재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다시피 해서 매우 불우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으나 그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나서는 대학은 별로 없었다. 다행히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이 그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서 커크는 고향 미시건을 떠나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했다. 역사학과 정치사상을 공부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토머스 제퍼슨에 대항했던 로노크의 존 랜돌프(John Randoph of Roanoke)가 그의 석사학위 논문이었다. 듀크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미국 남부의 보수주의 전통을 공부한 것이 그의 정치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듀크의 교수들은 커크에게 박사과정 진학을 권했으나, 전쟁 발발로 러셀은 군에 입대해야 만 했다. 전쟁 중 커크는 유타 주에서 복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러셀 커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University of St. Andrew)에 유학해서 195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보수적 생각(The Conservative Mind)’으로, 같은 해에 레그너리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다. 인문학 박사학위 논문이 책으로 출간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러셀의 이 책은 1952년에 나온 윌리엄 버클리 2세의 ‘예일에서의 신과 인간(God and Man at Yale(1952, Regnery)’과 더불어 미국에 보수주의를 일으키는 계기를 이루었다.

커크는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아담스(John Adams), 존 랜돌프, 존 캘훈(John Calhoun : 州의 권한을 주장한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 정치인으로 부통령과 상원의원을 역임. 처음으로 주가 합중국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 등을 보수주의로 규정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커크는 모교인 미시건 주립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나, 아카데미즘을 상실한 그렇고 그런 그 대학의 분위기에 실망해서 1959년에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리고는 조부가 살던 미시건의 메코스타(Mecosta)의 농장으로 돌아 와서 농장건물을 서재로 개축하고 저술과 강연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는 몇 개 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고, 보수주의 담론(談論)을 담은 잡지 ‘모던 에이지(Modern Age)’를 펴냈다. 그는 TV를 보지 않았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윌리엄 버클리 2세와 가까이 지냈으며, 버클리가 펴내는 녀셔널 리뷰(National Review)에 자주 기고했다.

1963년에 커크는 대학에서 커크의 초청 강연을 주관했던 20년 연하의 아네트(Annette)와 오랜 편지 교환 끝에 결혼했다. 결혼을 계기로 가톨릭 신자가 됐고, 네 딸을 낳아 길렀다. 많은 방문객들이 그의 집을 찾아와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토론을 했는데, 아네트의 음식 솜씨와 친절은 소문이 자자해서 미시건의 작은 농촌 마을에 자리잡은 커크의 집은 보수주의자들의 명소(名所)가 되었다. 커크는 역사와 정치사상에 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에드먼드 버크' 등 20여권의 책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커크에게 보수주의의 속성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수주의 10원칙(Ten Conservative Principles)’이라고 이름 붙여 내놓았다. 흔히 ‘보수주의 10계명’이라고 불리는 10개 원칙은 아래와 같다.

첫째, 보수주의는 항구적인 도덕적 질서(perpetual moral order)가 있다고 믿는다.
둘째, 보수주의는 전통, 관습, 그리고 계속성을 존중한다.
셋째, 보수주의는 오늘날 인간이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임을 믿는다.
넷째, 보수주의는 변화는 사려 깊어야 한다는 원칙에 의해 인도된다.
다섯째, 보수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온 다양한 원칙을 존중한다.
여섯째, 보수주의는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는 원칙에 의해 뒷받침된다.
일곱째, 보수주의는 자유와 재산권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여덟째, 보수주의는 자발적인 공동체를 지지하지만 비자발적인 집단주의는 배척한다.
아홉째, 보수주의는 인간의 권력과 욕구에 대한 현명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째, 보수주의는 항구성과 변화는 인식되어야 하며 또한 이 두 가치는 화해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

윌리엄 버클리 2세와 마찬가지로 커크도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1980년 대선에선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했다.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커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환담했다.

1994년 4월 29일 커크는 76세로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후 부인 아네트는 커크의 서재를 도서실과 세미나 실로 바꾸어서 러셀 커크 센터(The Russell Kirk Center)로 탈바꿈시켰다. 아네트는 다른 재단의 도움으로 보수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세미나를 열고, 학자와 대학원생들이 장기간 머물면서 연구하고 저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러셀 커크가 연구하고 사색하고 책을 쓰고 산책을 했던 농촌 집이 보수주의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산실(産室)이 된 것이다.

(* 러셀 커크와 러셀 커크 센터 사진은 갤러리에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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