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복, 그리고 헌법 전문

작성일 : 2021-08-17 21:54조회 : 1,723

광복, 그리고 헌법 전문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광복절이 몇 주년인지를 계산하는 방법은 올해에서 1945년을 빼면 된다. 하지만 6.25 전란 중이던 1951년 8월 15일 부산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제3회 광복절을 기념하는 축사를 했는데, 당시 신문이 제6회 광복절이라고 써서 혼란이 있었고, 그 후 1945년 8.15를 ‘광복’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양동안 교수) 양동안 교수의 주장대로 라면 1945년 8.15는 해방이고 1948년 8.15가 광복이 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 세대는 이런 논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1945년 8.15가 ‘광복’이 되었다.

광복절이란 명칭은 1949년 9월 21일 국회가 제정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확립되었다. 당시 그 법률 초안은 8.15가 독립기념일’로 되어 있었는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광복절’로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인도 필리핀 등 서구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독립기념일’이 있지만 우리는 ‘광복절’이 있는 것이다. 당시 국회가 ‘광복’이란 용어를 택하게 된 원인은, 우리가 비록 일본의 식민지로 35년간을 보냈지만 조선, 고려,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엄연한 주권국가의 후예이기 때문에 ‘독립’이란 용어는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입법사와 더불어 우리 헌법의 전문(前文)도 그런 해석을 가능케 한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시작한다. 4.19 후 개정된 2공화국 헌법도 이 부분은 변경이 없었다.

헌법 전문은 헌법을 제정한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에 제헌헌법의 전문(前文)이 가장 중요하다. 제헌헌법 전문은 삼일운동이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또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을 분명히 했다. 일제 통치 기간 동안 임시정부가 한반도에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과연 임시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망명정부로서 인정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제헌 당시 우리는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5.16후 국민투표로 채택된 3공화국 헌법은 헌법 전문을 바꾸었다. 3공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 -”로 시작한다. 개헌을 통해서 정부구조를 바꿀 수는 있지만 1948년 제헌 당시의 국가 정체성 부분을 이렇게 바꾼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는 조항 역시 엉뚱한데, 이는 5.16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3공 헌법은 국회가 없는 기간 동안에 국민투표로 결정되어서 이런 조항이 들어갈 수 있지 않았나 한다.

10월 유신 후에 채택된 4공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 -”로 시작한다. 유신헌법은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헌법인데, 여하튼 이를 추진한 박정희 정부는 유신헌법의 정당성의 근거로 ‘평화적 통일’을 중요하게 내세웠다. 그럼에도 유신헌법은 1972년 여름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맥없이 받아 들고 온 북한 용어로 쓰인 ‘자주 평화 통일’은 안 된다면서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을 새로 넣었다.

1980년에 제정된 5공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로 시작한다. ‘평화통일’로도 부족해서 ‘민족중흥’을 5공화국의 모토로 삼은 셈이다.(!) 5공헌법 역시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헌법이다.

1987년 현행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 -”로 시작한다. 현행 헌법은 제헌 헌법 보다 더욱 확실하게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제헌헌법은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규정하는데 그쳤는데, 87년 현행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규정한 것이다.

1987년 개헌 때 나는 당시 학계의 논의를 볼 수 있었다. 당시 공법학회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사법심사와 헌법재판소를 두고 많은 토론을 했지만 임시정부 법통 문제를 다룬 기억은 나지가 않는다. 임시정부 법통계승 조항은 정치학계나 역사학계에서 낸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나 한다.

나는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 전문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후에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천명한 헌법 전문은 그대로 남겨 두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제헌헌법의 전문(前文)은 헌법제정 당시의 국가의 정체성인데, 그 후 개헌을 할 때마다 전문을 손을 본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제헌헌법을 확정시켜 통과시킨 제헌 국회의 의장이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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