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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게감 없는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
작성일 : 2021-09-06 16:40조회 : 54


무게감 없는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수가 미숙해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프간 전쟁에서의 실패에는 민주당 정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오바마가 아프간 전쟁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미군 30,000명을 아프간에 증파(troop surge)토록 한 결정은 아프간 전쟁의 분기점이었다. 그 결정이 이루어진 배경을 인맥을 중심으로 살펴 보면 오늘날 바이든 정권까지 연결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으로 외교위원회에서 있을 때 그를 보좌한 참모가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1973~ )다. (그는 2014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주한 대사를 지내면서 얼굴에 테러를 당한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다.) 스탠포드에서 석사를 하고 상원 외교위 스태프였던 리퍼트는 이렇게 해서 초선의원 오바마와 인연을 맺게 됐다. 2008년 대선에서 리퍼트는 오바마에게 외교 문제를 브리핑하는 등 역할을 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리퍼트를 국가안보회의(NSC) 참모장이란 새 자리를 만들어서 그를 임명했다. 그리고 오바마는 제임스 존스(James Jones 1943~ ) 해병대장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자기보다 거의 20살이나 많은 존스 대장을 오바마가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한 경위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오바마는 대선 때 자기를 도운 토머스 도닐런(Thomas Donilon 1955~ )을 안보부보좌관으로 임명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민주당 선거판에서 뼈가 굵은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대통령에 안보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오바마는 존스 대장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오바마는 도닐런과 리퍼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이 두 사람은 안보에 특별한 내공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하는 문제를 다루게 됐다.

오바마는 대선 때 아프간 전쟁은 정당하며 자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러서 승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아프간 상황은 나빠지고 있었고 펜타곤은 병력 증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병대 사령관 출신인 안보보좌관 존스 대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닐런과 리퍼트는 이라크는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09년 10월, 마크 리퍼트는 NSC에서 사임을 하고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후임으로 데니스 맥도우(Dennis McDough 1969~ )를 천거했다. 맥도우는 조지타운에서 외교학 석사를 하고 하원 외교위원회와 의원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이 전부였다. 언론은 리퍼트가 병력 증파에 반대하다가 존스 대장한테 찍혀서 사임했다고 썼다.

한편, 부통령이 된 조 바이든은 자신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낼 때 외교위 수석전문위원이던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1962~ )을 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인 블링컨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NSC 스태프를 지낸 바 있다. 부통령으로서 아프가니스탄 현지를 돌아보고 온 바이든은 아프간 전쟁이 잘못되고 있음을 목격했고 그 후 철군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바이든은 당시 논의 중이던 병력 증파를 철저하게 반대했는데, 블링컨은 물론이고 도닐런과 맥도우도 이에 동조해서 오바마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당시 국방장관은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1943~ )이었다. 오바마는 전쟁 중임을 감안해서 2016년 말 럼스펠드 후임으로 조지 W. 부시가 임명한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낸 거물인 게이츠 국방장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의 4성 장군들과 안보보좌관 존스 대장이 모두 증파를 요구하고 나서자 오바마는 결국 증파를 결정했다. 합참은 미군 병력을 증강해서 탈레반을 억제하고 아프간 군대를 훈련시킨 후 완전 철수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오바마도 이에 동조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09년 봄에 5만 명이던 아프간 주둔 미군은 1년 만에 10만 명이 되었다.

이런 진통을 겪자 존스 대장은 사임하고 오바마는 부보좌관이던 도닐런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게이츠 국방장관은 도닐런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한 처사는 ‘참사’라고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 말해서 그런 기사가 나기도 했다. 게이츠 장관은 2011년 6월 말 사임했다. 오바마 행정부 2기에 들어서 도닐런은 안보보좌관에서 물러나고 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던 수전 라이스(Susan Rice  1964~ )가 안보보좌관이 되었으며, 안토니 블링컨은 안보부보좌관이 되었다. 2015년 초, 오바마는 블링컨을 국무차관에 임명했는데, 당시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많은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 발언을 하고 반대표를 던졌다.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은 안토니 블링컨을 일찌감치 국무장관으로 지명했고, 안보보좌관으로 제이크 설리반(Jake Sullivan 1976~ )을 임명했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인 설리반은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있었고,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자 조 바이든 부통령실에서 안보 스태프로 일했으며 블링컨이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영전해서 나가자 뒤를 이어서 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러니까 앤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반 안보보좌관은 모두 바이든 부통령실에서 한 솥밥을 먹던 참모였다. 

오바마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에 이르는 안보 라인을 보면 석사 학위나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들이고 상원의원의 참모 출신들로, 경력이  빈약함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안보 참모진이 경량급인 탓에 오바마는 펜타곤과 합동참모본부에 맥없이 이끌려서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결정했고, 바이든은 무모하게 철군을 해서 오늘날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재 공화당 의원들은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반 안보보좌관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은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반 안보보좌관. 표정부터가 무게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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