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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시, 베이커, 스코크로프트
작성일 : 2021-09-06 16:48조회 : 58


부시, 베이커, 스코크로프트


바이든 정부의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안보보좌관은 경량급인데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이고 두 사람도 군 경력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장관에 제임스 매티스 예비역 대장, 안보보좌관에 H. R. 맥마스터 중장을 임명했지만 트럼프는 최고의 야전사령관이었던 매티스  장관이나 최고의 전략가였던 맥마스터 중장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두 사람은 좌절해서 백악관을 떠났다.

오바마 정부에서 안보보좌관을 지낸 토머스 도닐런과 수전 라이스도 경량급이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라이벌이어서 두 사람은 진솔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9.11 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 안보보좌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무능해서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정책 주도권을 장악해 버렸다.

대통령과 안보보좌관의 관계로서 가장 모범적이 경우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이다. 두 사람은 동유럽 공산체제 붕괴와 걸프 전쟁이란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적절하게 대응해서 1990년대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를 열었다.

아래 사진(1)은 1991년 1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그리고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이 의논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베이커 장관은 그 다음 날 제네바에서 이라크 외무장관을 마지막으로 만날 예정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쟁 계획을 수립해서 막강한 병력을 전진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사진(2)는 걸프 전쟁 개전을 앞두고 세 사람이 백악관 정원을 걸으면서 심각한 대화를 하는 모습이다. 부시는 베이커와 휴스턴 시절부터 친구였다. 베이커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과 재무장관을 지냈다. 베이커는 프린스턴 대학을 나오고 해병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텍사스 대학 로스쿨을 나왔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항공장교로 공군 중장으로 예편을 했다. 컬럼비아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해군전쟁대학을 나왔고, 합참, 국방부, 그리고 닉슨/포드 백악관에서 일했다. (미국은 한 때 이런 훌륭한 대통령, 국무장관, 안보보좌관을 갖고 있었다.)

전쟁에 관한 중요한 결정, 즉 이라크 군대를 궤멸시키고 쿠웨이트를 해방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며, 바그다드를 점령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은 결코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은  스코크로프트의 확실한 생각이었고 부시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딕 체니 국방장관은 전술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야 하며, 이스라엘을 참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서 부시 대통령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걸프 전쟁에서 딕 체니 국방장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베이커 장관은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우방국들이 연합군으로 참가하도록 했다. 1월 12일, 미국 하원은 250대 183으로, 상원은 52 대 47로 전쟁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가 정해 놓은 쿠웨이트에서의 철군 시한인 1월 15일이 그대로 지나갔다. 1월 17일, 부시 대통령은 개전을 명령했다. 걸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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