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닐 쉬한 (Neil Sheehan 1936~2021)

작성일 : 2021-09-28 09:44조회 : 1,513

닐 쉬한 (Neil Sheehan 1936~2021)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해진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1943~ )는 베스트셀러도 많이 펴내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우드워드가 펴내는 책은 그의 스태프가 쓰는 것이다. 반면에 <국방부 비록>(The Pentagon Papers) 기사를 뉴욕타임스에 연재해서 우드워드 보다 먼저 유명해 진 닐 쉬한(Neil Sheehan)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닐 쉬한은 매사추세츠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서 장학금으로 고등학교와 하버드를 다녔다. 1958년에 하버드를 졸업한 그는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근무했다. 일본에 근무할 때 사이공을 여러 차례 왕래한 덕분에 그는 전역하자마자 UPI 통신의 베트남 종군(從軍) 기자가 됐고 2년 후 뉴욕타임스는 그를 종군 기자로 채용했다. 그는 1966년까지 4년간 베트남에서 전쟁을 취재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군사고문단과 소규모 그린베레 병력을 월남에 보내서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존슨 대통령이 통킹 만(灣) 사건을 이유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서 본격적인 미국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쉬한은 사이공에서 취재활동을 할 때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1934~2007)이 뉴욕타임스 종군기자로 있었고, 랜드 연구소의 다니엘 엘스버그(Daniel Ellsberg 1931~ ) 박사가 전쟁 상황을 관찰하러 파견되어 있었다. 엘스버그 박사는 나중에 <국방부 비록> 기사가 되는 기밀문서를 쉬한에게 전달하게 된다. 쉬한이 사이공에 머물고 있을 때 디엠 정권에 반대하는 승려가 분신을 하는 등 월남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쉬한은 그 때 미군 장교로선 드물게 베트남에서의 전쟁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은 존 폴 밴(John Paul Vann 1924~1972) 중령과 친분을 쌓게 된다.

1966년 가을, 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의(懷疑)와 미군 지휘부에 대한 불신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온 쉬한은 국방부와 백악관에 출입하면서 주로 국방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던 중 쉬한은 사이공에 있을 때 알았던 엘스버그 박사로부터 7,000쪽이나 되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국방부 비록을 접하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힐튼 호텔의 방을 빌려서 쉬한과 그를 보좌하는 기자가 기사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71년 6월 13일자 뉴욕타임스 특종으로 시작한 연재기사였다. 닉슨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보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으나 대법원이 보도를 억제할 수 없다고 판시해서 <국방부 비록>은 햇빛을 보았다. 뉴욕타임스는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쉬한은 유명해 졌으며 그가 쓴 연재 기사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1972년 6월 9일, 쉬한이 베트남에 있을 때 교분이 깊었던 존 폴 밴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밴은 며칠 전에 끝난 콘툼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야간에 헬기로 이동하던 중 사망한 것이다. 1주일 후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밴의 안장식에 참석한 쉬한은 밴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쉬한은 뉴욕타임스를 2년 동안 휴직하고 집필 준비에 들어갔으나 1974년 가을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결국 뉴욕타임스를 그만 두었다. 4~5년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밴에 관한 책은 1986년에 비로소 작업이 끝났고, 1988년에 랜덤 하우스에 의해 출간됐다.

뉴욕타임스를 그만 둔 쉬한은 잡지 기고 밖에 수입이 없었고 부인 수전도 프리랜서 기자로서 확실한 수입이 없었다. 딸 둘을 키우던 쉬한 부부는 책이 나오기까지 출판사와 잡지사로부터 30만 달러나 되는 빚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 <밝고 빛나는 거짓말>(A Bright Shining Lie: John Paul Vann and America in Vietnam)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그 동안 진 빚을 단숨에 갚을 수 있었다. 861쪽에 달하는 이 책은 베트남전쟁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쉬한은 퓰리처 상을 받았다. 쉬한은 존 폴 밴이야말로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쉬한은 밴의 성장 과정과 여성 편력 등 개인적 문제, 그리고 전쟁의 실상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베트남을 사랑했고 미군은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의 일생을 상세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1998년에 같은 제목으로 HBO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 졌다.

쉬한은 2009년에 대륙간 탄도미사일 체제를 수립한 버나드 슈리버 공군대장의 생애를 그린 <A Fiery Peace in a Cold War: Bernard Schriever and the Ultimate Weapon>을 펴냈고, 파킨슨 병 등 노환으로 금년(2021년) 1월 사망했다.

- (1)은 1963년 사이공에서 선배 종군기자 데이비드 핼버스탐(NYT) 및 맬콤 브라우너(AP)와 함께 찍은 사진 ; (2)는 <국방부 비록>이 나온 1971년 뉴욕타임스 사무실에서의 쉬한 ; (3)은 2009년 말년의 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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