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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영화

작성일 : 2022-01-20 13:04조회 : 1,305

대통령과 영화

1983년 5월 28~30일에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에서 9차 G-7 회의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열리는 G-7 회의라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8명의 지도자(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일본, 캐나다, 그리고 EC)가 참여하는 회의를 주재하게 되어 있었다. 이 회의는 당시 서독에의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와 자유무역 협상 시작 등 중요한 안건을 다루게 되어 있어서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 레이건 2기에 재무장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냄) 비서실장은 회의 의제와 미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방국의 시각을 정리한 브리핑 문서를 준비해서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내일 아침까지 읽어 보시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베이커 비서실장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서 레이건을 만나보니 책상 위에는 전날 자기가 전달한 브리핑 문서가 열어 본 흔적도 없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베이커는 기가 막혀서 레이건 대통령에게 이것을 안 읽어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레이건 대통령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글쎄 말이야, 짐, 어제 밤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왔잖아.”("Well, Jim, 'The Sound of Music' was on last night.")고 말했다. 레이건은 클래식 무비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예를 들면 ‘하이 눈’, ‘세인’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저녁에 TV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오자 그것을 다시 보느냐고 G-7 회의 자료를 열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레이건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이나 참모는 이처럼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었다.)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낼 때 나온 영화 <패튼>(1970년 초 미국 개봉)도 감명 깊게 보았다. 그는 자기가 조지 패튼 장군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조지 패튼은 배가 불쑥 나온 스타일이고 레이건은 훤칠하게 키가 커서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영화 <패튼>을 몇 번 씩이나 보고 실천에 옮긴 대통령은 리차드 닉슨이다. <패튼>은 1969년 12월에 나와서 1970년 2월 개봉관에서 상영하기 시작했다. 강경한 반공주의자인 닉슨 대통령은 원래부터 조지 패튼 장군을 존경했다. 영화 <패튼>이 나온 1969년 12월, 닉슨은 베트남 접경 지역의 베트콩 기지를 쳐부수기 위해 캄보디아에 대해 다시 공습을 하고 미군과 월남 정부군을 투입하는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은 물론이고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마저 작전의 효과와 국내 여론을 들어서 난색을 표했다. 이 때 닉슨은 백악관에서 영화 <패튼>을 몇 번씩 보았다.

1970년 3월, 닉슨은 캄보디아 내 북베트남 군 기지에 대한 B-52 공습을 명령했고 , 4월 중순에는 월남 정부군이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진격토록 했다. 4월 30일, 닉슨은 캄보디아로의 작전은 북베트남 군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직접 TV를 통해 발표했다. 그 다음날 닉슨은 국방부를 방문하고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 가서 며칠 간 휴식을 취했는데, 거기서도 영화 <패튼>을 다시 보았다. 닉슨은 자신이 패튼과 같이 평가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캄보디아에 대한 공습과 지상군 작전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 군은 또 다른 루트를 개발해서 남베트남에 잡입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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