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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드먼드 머스키
작성일 : 2022-01-29 15:10조회 : 414


에드먼드 머스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쁘고 힘든 일이 닥쳐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은 대통령답지 않기 때문이다. 1972년 미국 대선을 앞둔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선두주자였던 에드먼드 머스키(Edmund Muskie 1914~1996)는 그런 논란 때문에 도중에 낙마했다. 

에드먼드 머스키는 미국 북동쪽 캐나다 접경 지역인 메인 주 출신으로 코넬대 로스쿨을 나왔고 2차 대전 중 해군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메인 주의회 의원과 주지사를 지냈고 1958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돼서 내리 4선을 했다. 1968년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지냈고, 1980년에 이란 인질 구출작전 실패로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이 사임하자 뒤를 이어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머스키는 환경영향평가를 도입한 국가환경정책법(NEPA)을 제안해서 통과시키는 등 미국이 1970년대에 환경법을 확충하는데 가장 많이 기여한 의원이기도 하다.
 
머스키 의원은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 선거에서 머스키와 상대할 것이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닉슨은 임기 내에 베트남 전쟁을 명예롭게 매듭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머스키 의원에게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했다. 베트남 평화협상은 별다른 진전이 없어서 닉슨은 초조한 상태였는데, 의외의 사건으로 강적으로 보았던 머스키가 낙마를 하고 말았다.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뉴햄프셔를 방문 중인 머스키는 그 지역 신문이 자기가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비하했다는 뉴스가 나서 허위 사실이라고 해명을 했다. (메인과 뉴햄프셔는 흑인 인구는 적지만 프랑스계 주민이 많다.) 다음날 같은 신문이 머스키 의원의 부인이 알콜 중독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화가 난 머스키 의원은 그 신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짓말 기사를 규탄했는데, 그 때 눈이 많이 내려서 머스키 의원의 얼굴에 쌓인 눈발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화가 잔뜩 난 머스키 의원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데다 눈물마저 흘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메이저 언론들은 그런 일에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는 머스키가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는 기사와 칼럼을 내보냈다. 이것으로 머스키의 선거운동은 동력을 상실했고, 평화주의자이며 급진적인 진보성향인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됐다.

미국인들이 급진성향의 맥거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닉슨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만세를 불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나중에 공개된 백악관 관련 자료에 의하면 머스키 의원의 신상에 관한 뉴스는 닉슨의 외곽 참모가 간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하튼 머스키 의원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대선 본선도 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정치판에서 퇴출될 뻔했다. 1960년 대선에서 패배한 닉슨은 재기를 위해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는데, 현직인 민주당의 팻 브라운 지사한테 제법 큰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자 닉슨은 감정이 폭발해서 “이제 당신들이 발로 찰 닉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책임을 언론의 탓으로 돌렸다. 이를 두고 신문들은 ‘닉슨의 정치적 부고(訃告)’라는 칼럼을 실었다.
 
닉슨은 그 후 6년 동안 야인으로 있으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끝에 196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닉슨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 준 팻 브라운 캘리포니아 지사는 4년 후 1966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역대급 패배를 당했다. 레이건은 득표율 57.5%로 팻 브라운 보다 무려 100만 표를 더 얻어서 레이건 지지자들조차 깜짝 놀랐다. 이처럼 팻 브라운이 상대했던 닉슨과 레이건이 나중에 모두 대통령이 됐다.
     
우리나라에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후보가 자신의 역정(歷程)을 담은 영상물을 보면서 감정이 북받쳐서 잠시 눈물을 보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감정을 조절한 것이라서 오히려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예비역 장성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에서 “미군 바지 가랑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감정이 폭발한 적이 있다. 그것은 정권의 말기 현상을 보여 준 것이었다. 이처럼 ‘감정 조절’은 정치인의 필수적 자질임을 알아야 한다.

- 사진 : 1972년 대선을 앞두고 타임, 뉴스위크 등은 머스키 의원이 민주당 선두주자라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이 정도면 민주당 후보는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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