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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 커크패트릭, 엘리자베스 돌
작성일 : 2022-02-01 08:45조회 : 382


진 커크패트릭,  엘리자베스 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8년 임기 동안 여성 4명과 흑인 1명을 각료급으로 임명했으니, 여성과 흑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가장 유명한 각료급 여성은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 1926~2006) 유엔 주재 대사였다. 진 커크패트릭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조지타운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진 커크패트릭은 1979년 말에 나온 ‘독재와 이중기준’(Dictatorship and Double Standards)이란 논문에서 “우익 독재는 시간이 경과하면 민주주의로 진화할 수 있다. - - 전통적인 압제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가족과 대인관계를 파괴하지 않지만 공산혁명 체제는 이와 정반대다”라면서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는 소련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친미(親美) 독재정권을 비난하는 카터 정부의 이중성을 비난했다.

이 논문을 감명 깊게 읽은 레이건은 그녀를 만나서 도와달라고 했다. 커크패트릭이 자신은  민주당원이라면서 사양하자 레이건은 자기도 한때 민주당원이었다고 설득을 했고, 커크패트릭은 레이건의 요청을 받아 드렸다. 그녀가 레이건 진영에 가담함에 따라 카터에 비판적이던 민주당내 보수 인사들이 대거 공화당에 합류했다. 그녀의 남편도 저명한 정치학 교수로 민주당내 보수파와 교류가 깊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된 커크패트릭은 유엔에서 반미(反美) 활동이나 발언을 하는 나라의 명단을 상하원 의원들에게 보내서 원조를 삭감토록 하는 등 카터 행정부 시절의 앤드류 영 대사와는 정반대로 강경한 모드를 취했다.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하자 커크패트릭은 유엔 안보이사회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소련 조종사 이름까지 들어가며 소련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해서 당시 우리에게도 감명을 주었다.

개성이 강한 커크패트릭은 헤이그 국무장관 등과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 포클랜드 전쟁을 두고서 영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헤이그 장관과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그녀는 “민주당원이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는 데는 잘못이 없다”(There is nothing wrong for Democrats to support  Ronald Reagan.), “그들은 항상 미국을 먼저 비난한다”(They always blame America first.) 등 유명한 구절을 많이 남겼다. 2기 임기 들어서 레이건은 그녀를 다른 직위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조지 슐츠 국무장관 등이 반대해서 이루지 못했다.

대사직을 물러난 진 커크패트릭은 대학에 복귀했고 강연과 집필을 했다. 그녀는 말년에 “1970년대 서방세계는 공산권에 밀리고 있었지만 80년대 들어서 우리는 레이건과 함께 그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레이건의 대외정책 철학을 누구보다 잘 전달한 그녀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유엔 주재 대사를 지냈던 애들라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 II 1900~1965)과 함께 유엔에서 미국의 존재를 잘 부각시킨 대사로 평가된다.

1983년 초, 레이건 대통령은 밥 돌(Bob Dole 1923~2021) 상원의원의 부인이며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지낸 엘리자베스 돌(Elizabeth Dole 1936~ )을 교통장관에 임명했다. 엘리자베스 돌은 듀크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고, 닉슨 대통령에 의해 FTC 위원이 됐으며 밥 돌 의원을 만나 결혼을 했다. 당시 교통부는 드루 루이스(Drew Lewis 1931~2016) 장관이 항공관제사 파업을 수습한 다음이어서 크게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레이건은 민간 분야로 돌아가려는 루이스 장관을 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막지 못해서 엘리자베스 돌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엘리자베스 돌은 부시 행정부에서 다시 노동장관을 지내게 된다.

그 외에도 레이건은 하원의원을 지낸 마가릿 헤클러(Margaret Heckler 1931~2018)를 보건휴먼서비스 장관에, 고위 관료 출신인 앤 맥러핀(Ann McLaughlin Korologos 1941~ )을 노동장관에 임명했으나 두 사람은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유일한 흑인 각료는 8년 동안 주택도시개발장관을 지낸 새무엘 피어스(Samuel Pierce Jr. 1922~ 2000)이다. (피어스 장관에 얽힌 이야기는 별도로 쓰고자 한다.)

조지 H. W. 부시는 임기 4년 동안 여성 3명과 흑인 1명을 각료로 기용했다. 부시는 1988년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자신과 경쟁했던 밥 돌 상원의원의 부인이며 레이건 행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지낸 엘리자베스 돌을 노동장관으로 임명했다. 1976년 대선에서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던 밥 돌은 당시 5선 상원의원이었기에, 남편은 중진 상원의원이고 아내는 두차례 장관을 지낸 돌 부부는 워싱턴의 막강한 커플이었다. 엘리자베스 돌은 그 후 미국 적십자사 총재를 지냈고, 밥 돌은 199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엘리자베스 돌은 2000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서 처음에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조지 W. 부시에 의해 러닝메이트로 지명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부시는 딕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엘리자베스 돌은 2002년 선거를 앞두고 고향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서 상원의원에 당선돼서 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다. 장관으로서 엘리자베스 돌은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우아한 외모와 매너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 부시는 기업인 출신인 바버라 프랭클린(Barbara Franklin 1940~ )을 상무장관에, 하원의원을 지낸 린 마틴(Lynn Martin 1939~ )을 노동장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의사 출신인 보건 정책전문가인 흑인 루이 설리번(Louis Sullivan 1933~ )을 보건휴먼서비스 장관으로 임명했다. 

- 사진 (1)은 진 커크패트릭 대사, 사진(2)는 1996년 대선 당시 밥 돌, 엘리자베스 돌, 그리고 조지 H.W. 부시.  밥 돌과 부시는 모두 2차 대전 참전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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