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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택도시개발(HUD) 장관
작성일 : 2022-02-01 08:55조회 : 246


주택도시개발(HUD) 장관


주택 문제를 다루는 장관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골치 아픈 자리다. 미국에서 주택 공급은 민간의 영역이고 주택 정책은 지방정부 소관이었다. 그러다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의 일환으로 국가주택법을 제정하고 연방주택국(FHA)을 설립했다. 그 후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public housing)이 많은 도시에 들어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흑인들이 사는 열악하고 위험한 지역으로 전락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주택도시개발법을 통과시키고 주택도시개발부(Dep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 HUD)를 각료급 부서로 탄생시켰다. 존슨은 공공주택 건설을 주장해 온 로버트 위버(Robert Weaver 1907~1997)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흑인인 위버를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존슨은 저소득층의 주거가 향상될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1968년 대선을 앞둔 발언이었다.

1968년 대선에서 승리한 리차드 닉슨은 공화당 경선에 참가했던 조지 롬니(George Romney 1907~1995)를 HUD 장관으로 임명했다. 자동차 회사 경영자 출신으로 미시건 주지사를 지낸 롬니는 공공주택을 두고 대립하는 백인 주민과 흑인들 사이를 조정하려고 했으나 실패해서 좌절을 느꼈다. 1968년 주택법으로 빈곤층이 주택을 구입할 때 연방정부가 모기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부실채권이 폭증해서 큰 문제가 됐다. 1972년 대선에서 닉슨이 재선에 성공하자 롬니는 사표를 내버렸다.

대통령 감으로 거론됐던 롬니는 이렇게 추락했는데, 닉슨은 롬니가 1972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HUD 장관으로 임명해서 엿을 먹였던 것이다. 조지 롬니의 아들이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내고 2012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미트 롬니(Mitt Romney 1947~ )이다. 미트 롬니는 HUD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아버지가 겪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미트 롬니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낼 때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할 수 없는 서민층에게 주 정부가 보험료를 보조하는 제도를 시행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해서 통과시킨 ‘오바마 케어’의 모델이 되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법무부 차관보이던 칼라 힐스(Carla Hiils 1934~ )를 HUD 장관으로 임명했다. 1970년대 들어 공공주택은 마약범죄와 살인이 빈번한 위험한 슬럼으로 전락해서 큰 문제였다. 고층으로 지은 공공주택은 관리가 안 돼서 문제가 더욱 심각했는데, 세인트루이스 시에 있는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 단지가 대표적이었다. 칼라 힐스는 연방 자금 보조로 건설된 프루이트-아이고 단지를 해체하기로 결정했고, 이 단지가 폭파되는 장면은 공공주택 정책의 실패를 상징하게 됐다. 강단 있는 결정을 내린 칼라 힐스는 부시 행정부에서 무역대표(USTR)을 지내면서 우루과이 라운드와 북미자유무역 협상을 타결지었다.

카터 대통령은 흑인 여성인 패트리셔 해리스(Patricia Roberts Harris 1924~1985)를 HUD 장관으로 임명했다. 최초 흑인 여성 장관인 해리스는 쇠락한 공공주택단지를 철거하지 않고 재생하는 정책을 추진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카터는 해리스를 보건교육복지장관으로 임명하고 후임으로 뉴올리언스 시장을 지낸 문 랜드루(Moon Landrieu 1930~ )를 임명했는데, 1980년 대선을 앞두고 남부 백인표를 의식한 인사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주택과 교육 문제는 주 정부와 지방정부가 할 일이지 연방정부가 간여할 분야가 아니며, 존슨 행정부가 만든 HUD와 카터 행정부가 만든 교육부는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회에선 민주당이 다수당이었기 때문에 정부 조직 축소는 불가능했다. 레이건의 예산실장 데이비드 스톡먼(David Stockman 1946~ )은 국방비는 늘리고  다른 예산은 대폭 감축했는데, HUD 예산이 가장 먼저 칼질을 당했다.

레이건은 코넬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로 노동부에서 일한 적이 있는 새무얼 피어스(Samuel  Pierce Jr. 1922~2000)를 HUD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의 유일한 흑인 각료였다. 하지만 기존 사업 예산은 절반이 삭감됐고 새로운 사업 예산은 잡혀 있지 않아서 장관은 할 일이 없었다. 레이건 임기 초인 1981년 6월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국 시장회의(US Conference of Mayors)에 초청된 레이건 대통령은 자기한테 인사를 하는 피어스 장관이 그 회의에 참석한 어느 시장인줄 알고 "Hello, Mr. Mayor!"라고 응답을 했다. 대통령이 장관을 몰라 본 것이다.

이 소식이 뉴스에 나와서 화제가 됐다. 언론은 대통령이 장관을 몰라 볼 수 있느냐고 비웃었고, 레이건이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무엇보다 HUD의 위상이 추락하고 말았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모든 장관이 참석하는 국무회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레이건은 피어스 장관 존재 자체를 망각했던 것이다. 여하튼 피어스는 레이건 임기 8년 동안 장관 자리를 지켜서 레이건 행정부의 유일한 8년 장관이란 기록을 세웠다. (미국 역사에 장관을 8년 이상 한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할 일이 없었던 피어스 장관은 무려 8년 동안 집무실에서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88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경선에서 자기와 경쟁을 했던 잭 켐프(Jack F. Kemp 1935~2009)를 HUD 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원의원을 오래 지낸 그는 '보수의 JFK‘라고 불린 당내 보수파였다. 켐프는 레이건 대통령이 방치했던 부처를 재정비해야만 했다. 부시 대통령은 주택 정책에 대해 간여하기를 싫어했고, 재정적자를 관리해야 했던 예산실장은 HUD 예산 증액을 거부했다. 잭 켐프도 닉슨 행정부에서 조지 롬니가 겪었던 좌절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 켐프는 199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밥 돌의 러닝메이트로 클린턴과 앨 고어를 상대했으나 패배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서민층의 주택 구입을 촉진하는 ‘Affordable Housing’ 정책을 추구해서 주택가격 버블과 서브프라임 위기를 촉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택과 관련 없는 신경외과 의사 출신 흑인 보수 논객 벤 카슨(Ben Carson 1951~ )을 주택도시개발 장관으로 임명했다. 벤슨은 장관 노릇 보다는 강연 등 개인적 정치활동을 즐겼다. 1966년 후 지금까지 17명이 HUD 장관을 했는데, 그 중 흑인이 5명, 히스패닉/쿠바계가 3명이라서 소수인종 출신 장관을 많이 배출했다. 지금도 장차관이 모두 흑인 여성이다.

- 사진 (1)은 로버트 위버, 조지 롬니, 칼라 힐스, 사진 (2)는 패트리셔 해리스, 새무얼 피어스, 잭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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