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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케네디, 존슨, 험프리
작성일 : 2022-02-17 21:29조회 : 1,287
케네디, 존슨, 험프리
미국 부통령은 상원 회의가 열리면 사회를 보고 표결이 동수이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것이 유일한 권한이다. 대통령 후보는 부통령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는데, 196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가 된 존 F. 케네디는 자기와 경쟁했던 존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케네디 측은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였던 존슨이 사양할 줄 알고 제의를 했는데, 뜻밖에 수용해서 당황했다고 한다. 로버트 케네디는 존슨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데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등 순탄치 않았다. 텍사스 출신인 존슨 덕분에 케네디는 텍사스 등 남부에서 승리해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이 됐다.
법무장관이 된 로버트 케네디는 존슨 부통령을 ‘저급한 인간’ ‘동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멸했고 케네디 형제의 주변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도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남부 표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존슨이 필요함을 알았다. 1963년 11월, 케네디가 재클린, 그리고 존슨 부부와 함께 텍사스 댈러스를 방문한 것도 남부 주를 의식해서였는데, 거기서 케네디는 암살되고 만다. 형의 사망을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의 퉁명스런 짧은 전화로 통보받은 로버트 케네디는 충격으로 법무장관 집무실 바닥에 주저 않았다.
이처럼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부통령 사이에는 긴장과 대립, 상호간 경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댈러스에서 케네디가 사망하자 존슨은 자기가 알고 지내던 텍사스 주 판사를 댈러스 공항으로 불러서 대통령 전용기 속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재클린이 피 묻은 핑크 빛 옷을 입고 존슨 옆에서 선서를 지켜보는 유명한 사진이 남아 있다.) 케네디의 시신을 실은 전용기를 타고 존슨 대통령은 워싱턴 근교 앤드류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존슨을 대통령으로 생각해서 접대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케네디의 관(棺)과 재클린이었다. 존슨은 그 때 자신이 마치 대통령직을 부당하게 가져간 사람처럼 취급되고 있음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그런 어수선한 가운데 존슨을 처음으로 찾아와서 “당신이 대통령이니까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격려해 준 사람이 휴버트 험프리 상원의원이었다. 존슨보다 세 살 젊은 험프리는 초선 상원의원으로 언론에 알려지는 등 각광을 받았으나 민주당 내의 원로 의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는데, 이 때 험프리를 동료로서 따듯하게 대해준 사람이 존슨이었다. 존슨도 험프리와 같은 해에 상원에 진출했지만 존슨은 하원의원을 8년이나 지내서 의회에 친숙했고, 특히 존슨은 사람을 사귀고 관리하는 데 천부적 소질이 있었다.
존슨은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케네디 형제와 갈등을 빚었지만 케네디가 암살되자 순교자의 유산(legacy)은 사라지지도 않고 없앨 수도 없음을 잘 알았다. 존슨은 자기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케네디의 유산을 업고 가야함도 잘 알았다. 존슨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 케네디 정부의 주요 각료를 유임시켰고 백악관 스태프도 강제로 교체하지 않았다.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도 1964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할 때까지 그대로 머물렀다. 존슨은 상원 원내대표를 지냈던 인맥 관계를 총동원해서 케네디 대통령이 입안했지만 의회를 통과시키지 못한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이 의회를 통과토록해서 미국 인권역사에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전당대회는 존슨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고, 존슨은 러닝메이트로 험프리를 지명했다. 존슨은 텍사스 출신이고 험프리는 중서부 북쪽에 있는 미네소타 출신이라서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승리했다. 존슨 대통령과 험프리 부통령은 이처럼 무난한 관계였으나 1965년 2월에 험프리가 베트남 전쟁은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서신을 존슨에게 보낸 후 두 사람 사이는 차가워 졌다. 존슨의 확고한 자세에 놀란 험프리는 그 후 베트남 전쟁이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식으로 의견을 바꾸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여하튼 맥조지 번디 등 참모들의 의견에 의존해서 베트남 전쟁을 확대한 존슨은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었고, 결국 1968년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만다. 존슨은 케네디의 후광에 가려지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되지만 의회 정치를 잘 알았던 대통령이었다. 험프리는 베트남 전쟁을 두고 방황한 셈인데, 부통령이란 지위가 갖는 한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 사진은 험프리 상원의원, 존슨 부통령, 케네디 대통령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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