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예산실 (OMB)

작성일 : 2022-02-26 20:40조회 : 1,284

미국 예산실 (OMB)

어제(2월 25일) 대선 후보 토론 처음에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다루었는데, 안철수 후보가 미국은 예산권을 의회가 갖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예산권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면서 이재명 후보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재명 후보는 미국도 대통령이 예산편성을 한다면서 간단하게 답했다. 물론 이재명 후보의 답이 맞는다.

안철수뿐만 아니라 많은 의원 또는 평론가들도 미국은 예산권을 의회가 갖고 있다면서 예산편성권을 국회로 보내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자고 말하곤 한다. 20대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서 나는 그것이 잘못된 지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헌법 1조 8항은 세금과 재정에 관한 권한이 의회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 초기부터 재무부는 하원과 협의해서 예산을 운영해 왔다. 20세기 들어서 재무부에 예산국(Bureau of Budget)이 만들어졌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예산국을 대통령실 소속으로 옮겼다. 대통령은 예산국이 마련한 예산안을 의회에 보내고 의회가 통과시키면 행정부는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사실상 다를 것이 없다.

예산국은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70년에 예산실(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 OMB)로 확대되었고 각료급 지위를 갖게 됐다. 예산(budget) 이외에도 관리(management) 기능을 추가해서 예산 집행도 관리하게 한 것인데, 대통령 직속인 예산실장(Director of OMB)은 웬만한 장관 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됐다. 닉슨 대통령은 1970년 7월에 예산실(OMB)이 발족한 후 재임 기간 중 3명을 실장으로 임명했는데, 세 사람 모두 큰 족적을 남겼다.

닉슨이 임명한 초대 예산실장은 조지 슐츠(George Shultz 1920~2021)로 1970년 7월부터 72년 6월까지 재임했다. 슐츠는 MIT와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닉슨에 의해 노동장관으로 임명됐고, 2년 동안 예산실장을 지낸 후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 후 민간으로 돌아가서 벡텔 그룹을 경영하다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1982년 7월에 국무장관으로 임명돼서 레이건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재직했다.

슐츠에 이어서 예산실장이 된 사람은 캐스파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 1917~2006)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낼 때 주정부 예산국장을 지낸 와인버거는 그 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지내다가 닉슨 대통령에 의해 예산실 부실장으로 기용됐고, 조지 슐츠가 재무장관이 되자 후임으로 예산실장이 됐다. 그는 예산 배정에 워낙 깐깐해서 ‘칼 같은 캡’(Cap the Knife)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3년 2월에 보건교육복지부(HEW) 장관이 돼서 포드 행정부까지 머물다가 민간분야로 복귀했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오래 지냈다.

와인버거의 후임으로 예산실장이 된 사람은 로이 애쉬(Roy Ash 1918~2011)이다. 닉슨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행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에 사업가 출신인 로이 애쉬를 임명했다. 애쉬위원회(The Ash Council)이라고 불린 이 위원회는 기존의 예산국을 예산실(OMB)로 확대하고 환경행정 부서를 설치할 것 등을 건의했다. 그는 자기가 건의해서 생긴 예산실 실장을 2년간 지낸 후 다시 민간사업으로 복귀했고,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그는 죽기 전에 대학과 연구소에 거액을 기부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0년 한 해 동안 예산실(OMB)을 발족시키고, 애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환경보호처(EPA)를 독립된 환경규제부서로 발족시켰고, 해양대기청(NOAA)을 상무부 산하의 독립된 부처로 발족시켰다. OMB, EPA, NOAA는 모두 성공한 정부 부처로 평가되는데, 닉슨 대통령의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닉슨은 조지 슐츠와 캐스파 와인버거를 예산실장과 장관으로 기용해서 두 사람이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다.

닉슨은 하원의원을 지낸 조지 H. W. 부시를 유엔 주재 대사로, 그리고 도널드 럼스펠드를 백악관 보좌관과 나토 주재 대사로 임명해서 그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토록 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지만 그가 탄생시킨 OMB, EPA, NOAA는 물론이고 그가 키운 슐츠, 와인버거, 부시 그리고 럼스펠드는 그 후 미국 역사의 한 시대를 장식했다.

- 사진은 캐스파 와인버거와 로이 애쉬.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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