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거와 세금

작성일 : 2022-03-18 16:14조회 : 1,097

선거와 세금

세금에 대해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경우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시는 재임 4년 동안 소련 등 동유럽 공산권 붕괴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고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을 마무리 짓는 등 혁혁한 업적을 남겼지만 1992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공화당 12년 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있었고, 부시가 추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인한 미국 중소 제조업자들과 제조업 근로자들의 반발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공화당의 지지기반이었던 남부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부시를 싫어했던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코네티컷 출신인 부시는 미국 성공회 교회를 나갔다.) 뿐 만 아니라 부시가 세금을 올렸고 또 새로운 세금을 도입한 것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

1988년 대선에서 부시는 “내 입술을 읽으시오,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lips. No new tax.")라는 유명한 약속을 했다. 이 구절은 레이건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페기 누넌(Peggy Noonan)이 만들어낸 너무나 강력한 약속이었다. 하지만 부시는 1990년에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을 29%에서 32%로 인상하고 사치세(Luxury Tax)를 도입하는 법안을 민주당과 협의해서 통과시켰다. 최고구간 소득세 인상은 레이건이 인하한 것을 다시 올리는 것이라서 레이건 추종자들은 불쾌하게 생각했다. 사치세는 10만 달러 넘는 요트, 25만 달러 넘는 자가용 비행기, 3만 달러 넘는 자동차, 1만 달러를 넘는 보석과 모피를 상대로 초과가액에 대해 10% 연방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도록 했다.

부시 대통령은 고(高)금리 시대에서 갑자기 저(低)금리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실이 불가피하게 생긴 저축은행(Savings and Loans : S&L)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만 했다. S&L의 주된 사업은 주택을 구입할 때 장기 융자를 해주는 소매금융이었는데, 갑자기 금리가 떨어지자 이들이 과거에 대형 투자금융사로부터 비싼 이자를 주고 빌려온 돈을 상환할 수 없게 되어 업계 전체가 부도가 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퇴임해서 부시 대통령이 덤터기를 쓰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금융위기를 해소했는데, 이로 인해 재정적자가 늘어났다.

하지만 세금 인상은 레이건이 천명한 보수 철학을 배신하고, 부시 자신이 1988년 선거 때 내건 약속도 번복하는 것이었다. 부시는 재정이 악화돼서 부득이 하게 증세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지만 공화당 내의 보수파인 패트릭 뷰캐넌, 재계 인사인 스티브 포브스 등이 반대하고 나서서 공화당은 분열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NAFTA를 반대하는 제3후보 로스 페로가 독자 출마를 강행해서 부시는 빌 클린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부시 정부가 사치세를 도입하자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요트 업계와 소형 자가용 비행기를 제조하는 미국 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부자들은 자신들을 타깃으로 삼은 사치세를 내면서 요트와 비행기를 살 생각이 없었다. 요트와 자가용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는 전부 미국 기업이었는데,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해서 감원을 하고 폐업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세수(稅收)를 늘이자고 사치세를 도입했더니 회사가 망하고 실업자가 늘어나서 정부는 실업수당을 더 주어야 했으니 오히려 재정을 축내고 말았다. 보석상과 모피 상점도 타격을 입었다. 부자들은 자기들을 표적으로 한 더러운 세금을 내면서 쇼핑을 하기 보다는 유럽에 가서 휴가를 즐기는 편을 택했다.

요트업계와 비행기 제작사들이 아우성을 해서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초에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사치세를 폐지해 버렸다. 공화당 정부가 도입한 세금을 민주당 정부가 폐기했으니 우스운 일이었다. 고가 자동차에 대한 사치세는 아들 부시 행정부 들어서 폐기되었으니 아버지가 도입한 세금을 아들이 폐기한 셈이다. 자동차에 대한 사치세가 뒤늦게 폐지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90년 기준으로 3만 달러를 넘는 자동차는 벤츠, BMW, 포르쉐 같은 주로 독일 자동차였기 때문에 미국 자동차 업계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사치세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포드 F 시리즈 같은 경트럭과 그 때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SUV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독일 자동차 회사에 불리한 사치세가 자유무역 원칙에 위반된다고 WTO에 제소했다. WTO는 자동차 사치세가 미국 자동차에도 동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WTO 협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하마터면 아버지 부시는 자기가 탄생시킨 WTO에 의해 자기가 만든 세금이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을 뻔 했다.

천성적으로 낙천주의자인 레이건 대통령은 재정적자가 늘어나도 결국은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예산실장이던 데이비드 스토크먼(David Stockman)은 국방비가 너무 늘어나서 재정적자가 심해진다고 대통령에게 정색을 하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레이건은 30대 젊은 예산실장에게 “데이비드, 국방예산은 국가 문제이지 예산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하고 웃어 넘겨서 스토크먼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레이건이 증가시킨 국방비 덕분에 1991년 걸프 전쟁 때 미국은 토마호크 미사일과 최신 전폭기로 이라크를 초토화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부시 대통령은 매사에 나이스한 사람이라서 재정적자를 무시할 만한 뱃장이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너무나 유능하고 성실한 딕 다만(Dick Darman)이란 예산실장이 옆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부시는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클린턴이 취임한 1993년부터 윈도 3.0이 인터넷 시대를 활짝 열었고, 그로 인한 IT 경제 호황이 하늘을 찔렀다. 냉전이 끝나서 국방비를 감축한 데다 IT 호황이 일어나서 세수가 폭증했고 덕분에 재정은 금방 흑자로 돌아섰다.

1990년대 IT 경제를 이끌었다는 빌 클린턴은 정작 컴맹이었다. 조지타운 로스쿨을 나오고 고향 아칸소로 내려가서 젊은 시절부터 주 법무장관과 주지사를 지내고 대통령 8년을 지낸 클린턴은 컴퓨터로 타이핑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비로소 손수 팩스를 보내 본 클린턴은 팩스 전송을 신기하게 느꼈다고 한다. 클린턴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아버린 대통령이 차라리 훌륭했음을 보고 우리는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 사진 (1) 레이건과 데이비드 스토크먼 예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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