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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존 린지 (8) 1971~73 : 포레스트 힐
작성일 : 2022-03-27 17:34조회 : 1,129
존 린지 (8) 1971~73 : 포레스트 힐
1971년 2월, 뉴욕타임스는 존 린지 시장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197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71년 들어서 린지는 뉴욕 시정에 흥미를 잃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린지는 뉴욕시 보다는 동북부와 중서부 진보적 대학 캠퍼스에서 인기가 더 좋았다.
그해 8월, 린지는 공화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공화당에선 누구도 그를 아쉬워하지 않았지만 그가 민주당에서 환영받는지는 별개 문제였다. 그는 당적을 바꾸면서 민주당도 완전하지 않다면서 자신은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시청에서 일하던 린지의 가까운 참모들은 197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 프라이머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뉴욕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뉴욕 정계에서는 급진 성향인 민주당 소속 흑인 여성 하원의원 셜리 치섬만 린지를 지지했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던 린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사건이 포레스트 힐스(Forest Hills) 공공주택단지 건설 문제였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부터 건설된 공공임대주택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주거를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도시의 공공주택(public housing)은 결국 주로 흑인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지로 전락했다. 존슨 대통령이 시작한 ‘위대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으로 자녀가 있는 한 부모 가정에 대해 복지수당이 지급되자 공공주택에서 살면서 복지수당을 받아 아이들을 어머니가 혼자 키우는 흑인 가정이 폭증했다. 1960년대 들어 마약과 범죄가 만연해서 많은 공공주택단지가 위험한 곳으로 전락했다. 린지는 1965년에 뉴욕 시장에 출마하면서 첫 임기 동안에 아파트 16만호를 공급할 것이며 중산층이 살고 있는 지역에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장이 된 린지는 외부 전문가에게 주택정책에 관한 연구용역을 주었다. 1966년에 나온 이 보고서는 주택 정책을 통해 도시의 인종적 경제적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로운 공공주택단지를 건설하기 보다는 기존의 주택 단지 부근에 공공주택을 공급해서 주택공급을 통해 중산층과 저소득층, 백인과 흑인 간의 사회적 통합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주택이 문제가 많음이 알려져서 대규모 공공주택단지를 새로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혼재 주택(scattered housing)이라고 불린 이 이론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린지는 이 정책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소득 수준과 문화가 다른 여러 계층의 주민을 억지로 섞으려는 것은 반발을 야기했다. 퀸스(Queens)의 코로나(Corona) 지역에 공공주택을 공급하려고 하자 블루칼라 이태리 계가 대부분인 지역주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공동체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지역의 이태리 계 주민들 뿐 아니라 배후 지역 주민들도 거세게 반발해서 뉴욕시는 공공주택 단지를 원래 위치에서 떨어진 포레스트 힐스(Forest Hills) 지역으로 옮겨 건설하고 원래의 위치에는 늘어난 인구를 위한 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자 주로 유태인들로 구성된 포레스트 힐스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코로나 지역에 세워질 학교의 부지로 편입된 곳에 살던 주민들과 공공임대 아파트가 들어설 포레스트 힐스 지역에 살고 있던 유태인 주민들은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마리오 쿠오모(Mario Cuomo 1932~2015) 변호사를 고용해서 뉴욕시를 상대로 싸우기로 했다. (쿠오모는 퀸스에서 태어나서 그 지역에 있는 세인트 존스 대학 로스쿨을 나온 이태리계인데, 이 사건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마리오 쿠오모는 1974년에 뉴욕주 국무장관이 되고 부지사로 선출되며 1983년부터 12년 동안 뉴욕 주지사를 지내게 된다. 그의 아들 앤드루 쿠모도 2011년부터 10년 동안 뉴욕 주지사를 지내고 또 다른 아들 크리스 쿠오모는 유명한 CNN 앵커가 된다. 린지의 실패한 주택 정책 덕분에 뉴욕에 쿠오모 왕조가 열린 셈이다.)
퀸스 지역의 이태리계 주민과 유태인 주민들은 소송 뿐 아니라 언론도 동원해서 린지 시장과 싸웠다. 이들은 “린지가 퀸스를 파괴하려고 한다. 이제 퀸스는 린지를 파괴할 것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포레스트 힐스에 사는 유태인 중산층은 브루클린과 브롱크스에 살다가 그곳에 흑인들이 이주해 들어오자 퀸스로 이사를 와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 왔는데, 저소득층이 사는 공공주택 단지가 자기들 지역에 들어온다고 하니까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마리오 쿠오모가 마련한 조정안이 채택되는데, 원래 계획된 규모를 대폭 축소해서 12층 건물 3동 432 가구를 짓기로 하고 그 중 40%는 노년층 가구로 하며, 입주 자격인 소득수준도 상향하고 공공주택 주민들도 지역 코업(Co-op)에 가입해서 회비를 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복지수당에 의존해서 사는 저소득층은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주민들은 이에 동의했다.
포레스트 힐스 문제에서 주민들을 성원한 하원의원으로 에드 코치(Edward Koch 1924~2013)가 있었다. 브롱크스에 태어난 폴란드계 유태인인 코치는 시티 칼리지와 뉴욕대 로스쿨을 나온 후 그리니치 빌리지가 있는 맨해튼 지역을 대표하는 시의원을 지내고 1969년부터 8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냈다. 오랜 민주당원인 그의 하원 지역구는 뉴욕시 북쪽 외곽이었으나 포레스트 힐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자신과 같은 유태인 주민들의 편을 들었다. 유태인인 에드 코치는 저소득층이 사는 공공주택이 들어서면 훌륭한 주거지역인 포레스크 힐스가 슬럼이 되 버린다고 유태인 비중이 높은 주민들 편을 들었다.
코치는 린지 시장이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드 코치는 원래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었으나 포레스트 힐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진보’(liberal with sanity)라고 지칭하고 자기는 진보주의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그는 1978년부터 12년 동안 뉴욕 시장을 지내면서 망가진 뉴욕시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1970년대 들어서 미국 도시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대규모 공공주택 단지가 실패작임은 널리 알려지게 됐다. 포드 행정부 시절에는 칼라 힐스 주택도시개발장관이 세인트 루이스 시의 프루이트-아이고 공공주택 단지를 폭파해 버려서 대규모 고층 공공주택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작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공공주택을 기존의 주택단지와 섞어서 건설하는 ‘혼재 주택(scattered housing)’ 방식도 사회통합을 이룬다는 막연한 이상(理想)을 펼친 책상머리의 진보적 아이디어였다. 듣기에는 그럴싸한 이 구상은 포레스트 힐스에서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는 등 부작용을 부르고 좌초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뉴욕시장으로서 존 린지는 끝나고 말았고, 이 논란을 계기로 유명해진 마리오 쿠오모와 에드 코치는 그 후 뉴욕 주지사와 뉴욕 시장을 오랫동안 지내게 된다.
- 사진 : (1) 포레스트 힐스 거리 모습 (2) 에드 코치 시장과 마리오 쿠오모 주지사 (1980년대 후반기로 추정된다.) 코치는 폴란드계 유태인이고 쿠오모는 이태리 계이다. 유태인과 이태리계 주민들은 앵글로 백인과 흑인들 사이에서 두 집단을 모두 경험하면서 뉴욕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강력한 응집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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