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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권력 이양

작성일 : 2022-04-03 18:23조회 : 1,369

미국 대통령 권력 이양

대통령 인수위가 BTS에 대한 병역 면제 같은 사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이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인지, 아니면 인수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쏟아 내는 설익은 아이디어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인수위는 권력을 무난하게 이양(移讓) 받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하지만 어떤 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이양 받게 되면 신·구 정권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데, 우리는 1997년 대선 후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신·구 정권이 협력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선이 끝난 후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기간 동안을 권력 이양기(transition period)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그 기간이 2개월이다. 미국도 1933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 시작이 1월 초로 당겨진 후에는 그 기간이 2개월이다. 그 전에는 대통령 임기 시작이 3월 초라서 4개월 간극이 있었다. 4개월이란 공백 기간 때문에 남북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했고, 1930년대 초 대공황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고 평가된다.

권력 이양 기간 중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필요한 예산이 지원된다. 하지만 그 기간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당사자에 달려 있다. 퇴임하는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자가 권력을 무난하게 인수 받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에서는 두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며칠 전에 이곳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클린턴에서 조지 W. 부시로 정권이 넘어 오는 과정은 매우 치졸했고, 그로 인해 오사마 빈 라덴이 야기하는 위험이 제대로 인계되지 않아서 9.11 테러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퇴임하는 클린턴은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당선자인 부시도 이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008년 대선 후 정권이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는 과정은 정권 이양이 매우 원만했던 모범적인 사례로 뽑힌다. 오바마 대통령도 자기가 정권을 인수 받은 과정은 매우 원만했다면서 부시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뜻을 몇 차례 언급했다. 이라크 전쟁 실패와 임기 말에 발생한 금융위기로 자신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달은 부시는 오바마 당선자한데 최대한 협력했다. 오바마는 선거 3주일이 지난 11월 24일, 티모시 가이스너(Timothy Geithner 1961~ )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 뉴욕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가이스너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차관보를 지낸 바 있었고 대선 기간 중에도 차기 재무장관으로 유력시됐다.

퇴임하는 헨리 폴슨(Henry Paulson Jr. 1946~) 재무장관과 가이스너 재무장관 지명자, 그리고 벤 버냉키(Ben Bernanke 1953~) 연방준비제도위 의장은 긴밀하게 협력해서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했다. (하지만 납세자의 돈으로 부실한 대기업을 구제해 주었다는 이유로 오바마는 자신을 지지한 많은 보통사람들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오바마는 부시 정부의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1943~)를 유임시켰다. 전쟁 상황임을 고려한 조치였겠으나 오바마는 게이츠 장관과 합참 장성들에 휘말려서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프간 전쟁을 연장시키는 큰 패착을 두었다.

2016년 대선 후 권력이양은 순탄치 않았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사이버 여론조작 등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지원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바마는 트럼프 측이 푸틴,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세력과도 연락을 하고 있음도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었다. 사인(私人)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반역죄(treason)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다. 한편 대선 기간 동안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에 공식 이메일이 아닌 민간 서버를 이용하는 사적 이메일로 기밀 내용을 주고받았음이 드러나서 곤란을 겪었다.

힐러리의 이메일 문제를 조사한 FBI는 그런 행위가 부적절했지만 불법적이지는 않다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폭스 뉴스는 트럼프의 러시아 커넥션은 묵살하고 힐러리의 국무장관 시절의 이메일 문제와 리비아 벵가지 미국 대사관 피습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메일 문제만 아니었으면 힐러리가 당선됐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FBI가 힐러리의 이메일 사건을 수사할 때에 오바마는 FBI의 수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만일 대통령이 FBI의 수사에 간여한다면 그것은 권력남용과 사법방해죄를 구성해서 탄핵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자기를 도왔던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 1958~) 예비역 육군중장을 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마이클 플린이 안보보좌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오바마는 마이클 플린이 트럼프를 대리해서 푸틴 측과 거래를 한 당사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후 트럼프는 마이클 플린을 공식적으로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으나 주미 러시아 대사와의 접촉 등이 새롭게 드러났고 FBI가 이 문제를 수사하게 되자 임명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임했다.

당시 FBI 국장이던 제임스 코미(James Comey 1960~)는 트럼프 측의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관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 특별검사가 필요하다고 법무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5월 9일, 트럼프는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 (FBI 국장은 임기가 10년이고 연임할 수 없으나 대통령은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다.) 5월 17일, 당시 법무차관이던 로드 로젠스타인(Rod Rosenstein 1965~ )은 로버트 뮬러(Robert Mueller 1944~)를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제임스 코미에 앞서서 FBI 국장을 지낸 로버트 뮬러는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했다고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2019년 5월에 내고 특별검사직을 사임했다. 트럼프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낀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은 트럼프가 대통령의 직무를 할 수 없는 정신이상이기 때문에 헌법에 의해 직무를 박탈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법무부 동료들과 협의를 하기도 했는데, 뮬러 특검의 보고서가 나올 무렵에 사퇴했다.

이어서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도 뮬러는 같은 진술을 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바이든의 아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시켜서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을 압박했다. 트럼프 측의 이런 전략은 뮬러 특검의 조사 결과를 물 타기 하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마리 요바노비치(Marie Yovanovitch 1958~ )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를 해임하고 청문회에서 자기에 불리한 증언을 한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의 무관도 해임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탄핵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으나 상원에서 2/3 찬성을 얻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 실패했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이렇게 된 데는 2016년 대선에서의 트럼프의 역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트럼프와 러시아와의 관계, 그리고 2020년 미국 대선으로 그것이 180도 뒤집힌 것이 영향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공화당 다수 의원들이 그런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공화당이 레이건-부시 시절의 공화당에서 크게 이탈해 있음을 보여준다. (로버트 뮬러, 제임스 코미, 그리고 로드 로젠스타인은 모두 공화당원이다. 트럼프와는 다른, 원래의 공화당원인 셈이다.)

- 사진 : 헨리 폴슨, 벤 버냉키, 티모시 가이스너 (2008년 연말 정권이양 기간 중. 심각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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