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법은 의회의 전유물 ?

작성일 : 2022-04-10 19:00조회 : 1,095

입법은 의회의 전유물 ?

20대 국회 개헌특위, 그리고 작년 국회 국민통합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 중의 하나가 입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입법안을 내지 못하게 하고, 예산편성권도 국회로 가져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민주당 의원과 진보 성향 교수가 하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그것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미국 헌법에 의해 예산은 의회의 소관이지만 예산안을 작성하는 기관은 대통령 직속의 예산실(OMB)이다. OMB가 정부 예산안과 민주 공화 양당의 의견을 참조해서 초안을 만들어서 하원에 보내면 막강한 하원세입세출위원회가 의회안을 만들어서 백악관과 협상을 한 후 통과시킨다. 그러니까 예산 과정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부에게 법안 제출권을 주고 있지만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입법안을 제출하는 권한을 주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도 중요한 법안은 정부 법안, 즉 대통령이 추진한 법안이 대부분이다. 정부 법안, 즉 대통령이 추진한 법안은 해당 위원회의 여당 소속 의원의 이름으로 발의할 뿐이지 실제로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법안이다. 1964년과 1965년에 각각 의회를 통과한 민권법과 투표권법은 흑인들의 권리를 증진시킨 중요한 법률인데, 케네디 행정부 시절에 법무장관을 하던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차관 니콜라스 카첸바흐와 함께 만든 법안으로 민주당 의원의 명의로 제출됐다. 두 법안은 공화당 의원들과 민주당 남부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후에 존슨 대통령이 케네디의 유산(legacy)으로 의원들을 설득해서 상하원을 통과시킨 역사적인 법률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이 두 법안의 실질적 입안자는 케네디 형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중요한 의원입법은 실질적으로는 정부 법안인 경우가 많다. 근래에는 정부 제출 법안 자체가 별로 없는데, 정부 법안으로 제출하려면 법제처의 규제 분석을 거치고 차관회의과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관료 사회 자체를 적폐로 보아서 부처간 협의가 필요한 정부 입법을 기피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패배를 초래한 종부세법 개정, 임대차법 개정도 모두 2020년 정기 국회 때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의원 입법이었다. 국민에게 부담을 가하는 법안은 최대한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불문율을 무시하고 민주당이 ‘180석의 민의’라면서 오만을 떨더니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졸속으로 만들어내는 의원입법이 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 헌법은 대통령에게 법안 거부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회는 2/3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으며 그러면 법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그러나 의회에서 2/3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의원 입법인 경우라도 행정부와 협의가 되지 않으면 의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서도 의회가 2/3 재가결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압도하고 법안을 통과시킨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일뿐더러 ‘주된 입법자’(Chief Legislator)이기도 하다고 부른다.

대통령이 ‘주된 입법자’인 것은 대통령이 여당 의원의 법안으로 입법을 주도할뿐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법률에 대해 대통령한테 책임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국회가 법안을 만들었으니까 대통령인 나는 그것을 집행할 뿐이고 나는 그 법률의 내용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대통령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치졸한 책임 회피일 따름이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대통령은 원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 같아 보인다. ‘검수완박’ 자체도 문제이지만 대통령 임기 만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문 대통령이 서명을 해서 법률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다. 법안은 결코 의원들이 작당해서 적당히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슨 법안이든 간에 그것이 법률로서 국회를 통과되면 그것을 집행할 책임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의견을 참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곧 야당이 될 처지가 아닌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런 기가 막힌 악수(惡手)를 두기를 기대하고 있을 듯하다.

- 사진은 1964년 7월 2일, 민권법에 서명하는 존슨 대통령. 뒤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서있다.

이전글의원 겸직 장관

다음글스리랑카 1991년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