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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원 겸직 장관
작성일 : 2022-04-11 23:10조회 : 1,157
의원 겸직 장관
1962년에 제정된 3공화국 헌법은 제39조에서 “국회의원은 대통령ㆍ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지방의회의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고 규정해서 견제와 균형의 미국식 대통령제의 기본 취지를 살렸다. 그러다가 1969년 개헌 때 이 조항은 국회의원은 법률에 의한 겸직이 금지된다로 바뀌었다. 1972년 10월 유신 후 만들어진 유신 헌법도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고 그대로 규정하고(78조), 유신헌법에 근거한 국회법 30조는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직, 다른 법률로 허용된 직을 제외하곤”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도록 했다. 따라서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은 박정희의 3선개헌과 유신 헌법의 유산인 셈이다,
10월 유신이 일어날 때 국무총리는 김종필이었는데, 유신 후 비례대표로 당선되어서 총리직을 계속했다. 이처럼 3선개헌 헌법과 유신헌법이 의원과 총리 장관 겸직을 가능케 한 것은 그것이 그들만의 통치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유신 헌법은 권력분립이나 견제와 균형 같은 원칙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린 원천적으로 반(反)민주적인 헌법이었으니 이런 것은 논의할 가치도 없었다. 그런데 1987년에 개헌을 할 때도 국회의원이 총리 장관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해서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국회의원이 총리와 장관을 겸할 수 있게 하면 국회와 행정부가 유기적 관계를 갖게 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생각하고 87년 개헌 때 그 부분은 그대로 유지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87년 개헌 때에도 일련의 소장 학자들은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로 하고, 국무총리를 없애고 부통령을 두며,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은 대통령제의 기본 원칙인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는 것으로 1987년 개헌 때 금지해야 했는데, 그대로 살아남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엄격히 말한다면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을 허용하는 국회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회법이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을 허용한다고 해도 대통령은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해 본 사람이 장관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장점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처럼 의원직을 그만 두고 장관을 하는 것이 사리에 부합한다. 현직 의원이 장관을 하면 여러 가지로 이해가 상충될 수 있다. 장관으로서 가급적이면 자기 지역구에 도움이 되는 정책 결정을 할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너나없이 의원들이 장관을 하겠다고 대통령한테 충성경쟁을 하는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
여하튼 지난 정부에서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율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선 15% 안팎이었고, 노무현 정부에서 10%, 이명박 정부에선 17%, 박근혜 정부에선 21%였는데 문재인 정부에선 37.5%로 최고기록을 세웠다. 문재인 정부에 유독 의원 겸직 장관이 많은 데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다. 장관 후보자를 자신들의 코드에 맞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관료는 일단 배제하고 보니 인적 풀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교수군(群)을 후보로 놓고 인사검증을 해 보더니 시킬 만한 교수도 별로 없더라는 이야기였다. 말과 글로는 정의로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서 인사 검증을 통과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안전하게 가다 보니 의원 겸직 장관이 그렇게 많아진 것이다.
그러면 의원 겸직 장관이 정무 감각을 살려서 장관 노릇을 잘 했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작년 보궐선거 참패와 대선 패배를 가져온 주된 원인인 부동산 정책도 의원 겸직 장관이 주물러서 만들지 않았던가. 정치인이 장관을 하면 선거를 염두에 두는 정책을 펴는 게 보통인데, 결과적으론 선거에서 패배하는 정책을 골라서 썼다.
내가 의원을 했던 20대 국회에선 여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이 되지 않아서 한 표가 중요했다. 따라서 총리, 헌재 소장, 대법원장 인준이나 예산안 또는 공수처법 같은 법안을 다룰 때는 의원 겸직 장관이 총출동해서 의원 자리에 앉아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은 원내대표와 의장단 결정에 따라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표결이 있는 날은 장관들이 일정을 비우고 국회 의사당 주변에서 5분 대기조처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어느 기관이든 간에 자신의 이해와 상충이 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의원 겸직 총리나 장관은 국회 표결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겸직 장관이 표결에 참여하면 우스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추경호 의원을 경제부총리에 지명했는데, 추 의원은 일단 한덕수 총리 지명자에 대한 본회의 인준 투표에 참석해서 찬성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덕수 총리는 추경호 의원 등 장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추 의원은 자기를 부총리로 추천할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찬성투표를 하는 형상이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법에 규정은 없지만 비례대표 의원은 장관이 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순위 후보가 의원직을 승계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이 아니면 비례대표 의원은 골치 아픈 청문을 해야 하는 장관을 하지 않으려 한다. 지역구 의원이 장관이 되면 자기 의원실에서 일하던 보좌진 중 1~2 명을 장관 비서로 기용하고 남아 있는 보좌진 7~8명은 의원이 장관이 되는 날부터 ‘황금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국회법을 개정해서 의원의 총리 장관 겸직을 금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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