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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윌리엄 로저스 : 닉슨의 국무장관
작성일 : 2022-04-14 20:31조회 : 1,204
윌리엄 로저스 : 닉슨의 국무장관
닉슨 대통령 시절에 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William Rogers 1913~2001)는 매우 불행했던 미국 국무장관으로 기록될 만하다. 닉슨은 국무부를 소외시키고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함께 대외정책을 직접 챙겼기 때문이다. 닉슨이 로저스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이유는 로저스가 대외정책을 모르기 때문이었고 로저스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무장관으로서 로저스는 닉슨과 키신저의 무리한 정책에 대해 자주 비판적 의견을 냈다.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콜게이트 대학과 코넬 로스쿨을 졸업한 후 로펌에서 잠시 일하다가 뉴욕시 검사장 토머스 듀이(Thomas Dewey 1902~1971. 1943~1954년 간 뉴욕 주지사를 지내고 194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아래에서 검사를 지냈다. 당시 토머스 듀이 검사장은 마피아 등 조직범죄단을 수사해서 기소할 때였고 로저스는 4년 동안 1,000건을 맡아서 기소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30세 나이임에도 해군 장교로 입대해서 항공모함을 타고 태평양 전투에 참가했다.
전쟁이 끝난 후 로저스는 뉴욕 지검에 복귀했고 의회의 국방 관련 조사위원회의 법률고문을 지냈는데, 이 때 젊은 하원의원이던 닉슨을 만났다. 로저스는 하원 비미(非美)활동위원회 기록을 살펴보고 닉슨으로 하여금 앨저 히스(Alger Hiss 1904~1996)를 위증죄로 고발하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등 닉슨과 가까이 지냈다. (앨저 히스는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으며 동유럽 공산체제가 붕괴된 후 공개된 비밀문서는 히스가 소련의 간첩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로저스는 1950년부터 워싱턴의 로펌에서 일하다가 1952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아이젠하워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 그 때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닉슨이 불법적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자 로저스는 닉슨에게 유명한 체커 연설(‘체커’는 닉슨 가족이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다)을 하도록 해서 닉슨은 위기를 벗어나고 부통령이 됐다. 아이젠하워 정부가 들어서자 로저스는 법무차관과 법무장관을 지내게 된다.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자 로저스는 로펌 업무로 복귀했고 존슨 대통령에 의해 유엔 기구에 대표로 파견되는 등 정부 일을 간간히 맡기도 했다. 1968년 대선에서 당선된 닉슨은 국무장관으로 로저스를 일찌감치 지명했으나 닉슨은 대외정책은 백악관에서 자기가 주도할 생각이었다. 그 후 베트남 전쟁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외교 현안에서 로저스가 이끄는 국무부는 헨리 키신저가 주도하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실에 의해 소외됐다. 닉슨은 심지어 키신저가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해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만나는 계획마저 국무장관인 로저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훌륭한 법률가인 로저스는 닉슨이 캄보디아 내의 베트콩 기지에 대한 비밀 폭격, 캄보디아에 대한 지상군을 투입, 그리고 라오스 침공 작전에 대해서 의회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닉슨은 로저스 장관의 반대를 묵살하고 이들 작전을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중동 평화 문제는 로저스 장관이 이끄는 국무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분야였는데, 로저스는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철군을 하고 그 대신에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로저스 플랜’을 제안했다. 하지만 헨리 키신저는 중동 문제도 자신이 주도하려고 끼어들어서 로저스와 키신저 사이의 관계가 험악한 상태에 이르렀다.
국무장관으로서의 자신의 위상 뿐 아니라 워터게이트 사건이 점차 확대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낀 로저스는 1973년 9월 사표를 제출하고 원래 로펌 업무로 복귀했다. 닉슨 대통령은 한 달 후 자신의 오랜 친구인 로저스에게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그리고 1년도 안 되서 닉슨은 백악관에서 쓸쓸하게 나와야 했다. 닉슨과 가까웠던 많은 사람들이 워터게이트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는 등 끝이 좋지 않았지만 강직한 법률가였던 로저스는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로저스는 2001년 1월 87세로 사망했고, 그와 평생을 같이 한 아내도 4개월 후 눈을 감았다.
- 사진은 키신저, 로저스, 닉슨. (닉슨 대통령 임기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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