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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과 법무장관
작성일 : 2022-04-25 09:09조회 : 1,147
대통령과 법무장관
한동훈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잘한 인사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 볼 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대통령과 그렇게 가까운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법무장관은 국무위원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도 있지만 국법이 엄정하게 집행되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무장관은 다른 정책 부서의 장관과 구분돼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기 보다는 대통령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엄정할 수 있는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한동훈 지명자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문 대통령도 자신과 가까운 조국과 추미애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정권이 교체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론부터 말을 한다면, 법무장관은 대통령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대통령이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대표적인 경우가 케네디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는 36세의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하버드와 버지니아 로스쿨을 나온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 1925~1968)는 의회에서 특위 자문으로 일하고 형의 선거를 도운 것 외에는 별다른 경력이 없었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장관이 되고 나서 나중에 대법관이 된 바이런 화이트(Byron White 1917~2002)와 시카고 대학 로스쿨 교수이던 니콜라스 카첸바흐(Nicholas Katzenbach 1922~2012)가 차관(Deputy Attorney General)으로,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던 아치볼드 콕스(Archibald Cox 1912~2004)가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으로 합류해서 법무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로버트 케네디가 이끈 법무부는 흑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권법과 투표권법을 기초하고, 마피아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청문회를 주관하는 등 조직범죄를 다루기 시작했고, 대법원이 기본권에 관한 재판을 할 때에 기본권을 지지하는 정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등 찬란한 이정표를 남겼다.
케네디 정부에서 로버트 케네디의 역할은 법무장관의 직역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상 케네디 대통령의 최고 참모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합동참모본부가 강경론을 주장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로버트를 통해 비밀리에 소련과 협상을 해서 3차 대전 위기를 해소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동생인 법무장관이 이런 역할을 하는데 대해 군부와 CIA가 좋아했을 리가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한 피그스만(灣) 침공이 실패하자 CIA 국장 앨런 덜레스(Allen Dulles 1893~1969)를 경질해서 CIA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한테는 어두운 면이 많았다. 상원의원 시절에는 환락의 도시 쿠바의 아바나를 드나들면서 마피아와 어울렸다. 케네디 형제와 처남 매부 관계인 영화배우 피터 로포드( Peter Lawford 1923~1984)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와 관련이 깊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케네디는 백악관 풀장에서 수영을 즐겼는데, 거기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케네디 형제를 좋아하지 않았던 FBI 국장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도 물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가 케네디 대통령이 취한 모든 중요한 결정에 간여했다면 남베트남 대통령 고딘 디엠 살해를 지시하는데도 직접 간여했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1962년 8월 4일 일요일 아침,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가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의문의 사망을 했는데, 로버트 케네디는 그 전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하루 밤을 묵었다. 마릴린 먼로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버트 케네디가 연루되어 있다고 본다.
1968년 초부터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고 유진 매카시 의원은 반전 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반전 운동과 거리를 두었다. 그 자신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베트남에 미군을 보내기를 거부했는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후에 군사고문단이란 이름으로 그린베레 등 지상군 병력을 파견해서 미국은 베트남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은 케네디가 시작하고 존슨이 확대시킨 전쟁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후 의회는 대통령이 배우자나 형제 등 근친을 공직에 임명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근친이 중요한 공직을 하면 국정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을 로버트 케네디를 통해 겪은 후에 취한 조치였다. 이런 법률이 있는 것을 몰랐던 힐러리는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자기가 법무장관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의 딸과 사위가 백악관에서 보직도 없이 국정을 주물렀던 것도 이 법률 때문이었다. 이 법률이 없었더라면 트럼프는 딸과 사위를 백악관 보좌관으로 임명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무엇을 못하겠는가..)
대통령의 근친은 법무장관 등 고위공직을 못하는데, 대통령이 자기 친형제 보다 더 가까운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면 어떻게 될까? 대표적인 경우가 닉슨의 법무장관 존 미첼(John Mitchell 1913~1988)이었다. 미첼은 뉴욕에서 로펌을 세워서 채권 거래 등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떨어져서 낙담하고 있던 닉슨을 자기의 로펌에 파트너로 영입했다. 뉴욕으로 이사를 한 닉슨은 미첼 덕분에 안정적인 야인 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1968년 대선이 닥쳐오자 존 미첼은 닉슨의 선거 캠프를 이끌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미첼을 법무장관에 지명했는데, 닉슨은 FBI에 대해 미첼에 대한 검증을 간략하게 하도록 부탁했고,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 드렸다. (정치인의 약점을 잡는 것이 후버의 특기였다.) 선거 캠프를 이끌었던 사람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데 대해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으나 케네디는 자기 동생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으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1972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미첼은 법무장관직을 내려놓고 대통령 재선위원회(CREEP)를 이끌었다. CREEP가 저지른 일이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포토막 강변 조지타운에 자리 잡은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 있는 민주당 선거본부를 CREEP가 고용한 5인조가 한밤중에 침입해서 서류를 빼오려다가 걸린 사건이 바로 워터게이트다. 워터게이트의 진상이 점차 폭로됨에 따라 닉슨과 미첼은 파멸의 길을 가고 말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존 미첼이 그 때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 있는 큰 아파트에 살았다는 점이다. 워터게이트 콤플렉스는 사무실, 호텔, 아파트로 구성된 고급 건물로 1964~65년에 준공됐다.
- 사진 (1) 로버트 케네디와 케네디 대통령, (2) 존 미첼과 닉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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