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무장관과 검찰

작성일 : 2022-04-25 09:19조회 : 1,119

법무장관과 검찰

의원내각제 정부에선 법무장관은 의원 즉, 정치인이 맡게 되어서 그 휘하에 있는 검찰의 독립성이 취약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검찰총장을 별도로 두어서 검찰을 정치로부터 차단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직도 검찰을 사법부의 일환으로 보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마피아가 툭하면 검사를 암살하는 시칠리에서 피살된 검사의 공식 명칭이 판사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배심제도가 일찍이 발달한 영국은 당사자주의(adversary system)가 확립되었지만 유럽 대륙은 아직도 종교재판 같은 규문(糾問)주의(inquisitorial system)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택한 중남미 국가들도 사법체계는 유럽 대륙을 따르고 있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은 법무장관 외에 검찰총장을 두고 있는데, 검찰총장은 대법원이 추천하거나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경우 법무장관이 경찰을 지휘하더라도 검사는 사법부가 지명하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다. 유럽 대륙의 규문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셈이다. 검찰총장을 사법부가 임명하면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될 것 같지만 검찰이 사법부에 예속되면 문제가 많다. 법원과 검찰이 한통속이면 피고인이 대응하기가 어렵다.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Lula da Silva 1945~)가 2017~18년 자금세탁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된 것도 이 같은 사법제도와 관련이 있다. 사법부와 검찰이 공모를 하게 되면 재판은 '캥거루 법정(kangaroo court)'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 4공, 5공 시절도 그랬다.)

미국은 식민시대에 영국법을 받아드렸고, 배심 재판과 당사자주의를 수용했다. 1787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은 배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천명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서 통상적 재판은 주(州)의 소관이다. 주민자치가 발달함에 따라 보안관(sheriff)과 판사를 주민들이 선거로 뽑았고 법률 소양을 갖고 있는 사람을 검사(attorney)로 선출했다. 오늘날 지방검사장(District Attorney)은 물론이고 주 정부의 법무장관(State Attorney General)도 대체로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다. 판사와 검사를 선거로 뽑게 되면 지방 토호들이 검찰과 법원을 장악할 수 있으며, 실제로 오랫동안 그런 현상이 있었는데 인종 차별이 심했던 남부가 특히 그러했다.

그렇다면 법무장관을 정점으로 하는 연방검찰은 어떠한 경위로 발전했나? 미국 건국 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미국 정부에는 각료는 4명. 즉 국무장관, 재무장관, 전쟁장관, 그리고 법무장관뿐이었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할 때 의회는 국무부(Dept of State), 재무부(Dept of Treasury), 그리고 전쟁부(Dept of War)를 설치했고, 워싱턴은 제퍼슨을 국무장관에, 해밀턴을 재무장관에, 그리고 헨리 녹스 장군을 전쟁장관으로 임명했다. 세 명의 장관은 'Secrerary'로 불렸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의 최대 지주이자 부호인 랜돌프 가문의 에드먼드 랜돌프를 ‘Attorney General'로 임명했다.

국무, 재무, 전쟁장관은 부처(Department)가 있는데 비해 법무장관으로 번역해서 부르는 Attorney General은 대통령에 대해 법률자문을 하는 비상근 직책이었다. 즉, 법무장관은 변호사 등으로 자기 생업을 하면서 필요하면 법적 조언을 하고 수당을 받았다. 연방법원이 있는 지역마다 연방검사(US Attorney)와 집행관(US Marshal)을 두도록 했으나 이들이 법무장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책을 보면 법무장관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가 않는다. 존 애담스, 토머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이 모두 식민시대에 대학을 나온 변호사였고, 제임스 매디슨 역시 프린스턴에서 공부한 당대의 최고의 헌법학자여서 별도로 법무장관의 조언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조직도 작았고 일반적 민·형사 문제는 주 법원의 소관이라서 법무장관의 역할이 별로 없었다.

남북전쟁은 이런 사정을 확 바꾸어 놓았다. 남북 전쟁은 노예 제도를 두고 북부와 남부가 싸웠지만 그 배경에는 주권(州權)을 주장하는 남부와 연방정부의 우월을 주장하는 북부 사이의 대립이 있었다. 북부가 승리함에 따라 남부 주 정부는 해산되고 연방군(Union Army)에 의한 계엄통치가 한동안 지속됐으며, 의회는 헌법 수정 13, 14, 15조를 통과시켰고 이를 집행할 법률을 제정했다. 연방법을 집행할 부처가 필요해짐에 따라 의회는 1870년에 법무부(Dept of Justice)를 창설했는데, 그 수장의 명칭은 Attorney General로 그대로 두었고 연방검사와 연방집행관은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남부 주들은 양키들이 군대를 철수하더니 법무부를 만들어서 연방법으로 자기들을 통치하려한다고 보게 됐다.

남북 전쟁 후 미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런 시대적 상황에 부응해서 의회는 주제통상법(Interstate Commerce Act), 셔먼 반독점법(Sherman Act) 등을 제정했다. 이런 중요한 연방법을 집행해야 하는 법무부는 그 조직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1900년대 들어서 법무부는 록펠러 석유왕국을 상대로 반(反)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를 했고 결국 스탠다드 석유는 여러 개 회사로 분할되고 말았다. 1919년 금주(禁酒)를 명하는 헌법수정이 통과되고 이를 집행하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하자 법무부는 금주법을 집행해야만 했다. 아무리 황당해도 연방법은 연방법이기 때문이다. 금주법은 1933년 헌법수정으로 폐지됐다.

1950년 대 중반부터 대법원이 흑인 차별을 철폐하는 판결을 내리자 법무부는 그 판결을 집행해야 했다.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 때 흑인 학생을 입학시키라는 법무부 명령을 앨라배마, 미시시피 등 남부 주 정부가 거부하자 주 방위군을 연방정부 지휘로 전환시켜서 강제로 흑인 학생을 입학시키기도 했다. 1974년 법무부는 AT&T를 상대로 독점금지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982년에 AT&T는 회사가 분할되고 말았다. 이처럼 미국 법무부는 연방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외에도 민권법 침해와 독과점법 위반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 차관 등 고위직은 상원 동의를 얻어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산하의 93개 연방지방검찰청의 지검장도 상원 동의를 얻어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연방지검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 중이라도 대통령은 해임할 수 있으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임기 중에 해임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지방 검찰청이 독자적인 수사 인력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지방검사는 경찰과 영장 청구부터 긴밀하게 협력하며, 수사를 개시할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경찰 등 수사기관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연방검사도 연방법을 위반한 형사사건은 FBI 등 수사기관과 협력해서 수사를 진행한다. 뉴욕시 관할 연방검사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는 특별수사반을 지휘해서 악명 높은 뉴욕 마피아 두목들을 소탕한 바 있다.

사진 (1) 2018년 4월, 고등법원 판결 확정 후 수감되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사복경찰이 지지자들을 차단하고 있다. 사법부와 검찰이 결탁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2) 1963년 여름, 흑인 학생을 앨라배마 대학에 입학시키라는 집행명령을 갖고 캠퍼스에 도착한 니콜라스 카첸바흐 법무차관(오른쪽)과 이를 막아선 조지 월레스 앨라배마 주지사. 케네디 행정부의 법무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진이다. 대학 교수 출신인 카첸바흐는 로버트 케네디의 뒤를 이어 법무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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