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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위공직자와 변호사 배우자
작성일 : 2022-04-27 19:56조회 : 1,092
고위공직자와 변호사 배우자
부부가 모두 법조인인 경우를 꽤 보게 된다. 부부가 각기 다른 로펌에서 일하거나 부부 중의 일방이 판사나 검사인 경우에도 이해충돌 회피 원칙을 지키면 별 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법무장관 같은 고위공직자의 배우자가 유력한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경우는 보통 부부 법조인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해충돌 배제 원칙이 철저한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법무장관의 배우자가 변호사였던 경우는 없었다. 다른 부처 장관과 달리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법무장관은 이해충돌 가능성의 범위가 넓다고 보기 때문에 법무장관의 배우자가 변호사인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위공직자의 배우자가 변호사인 경우에 문제가 됐던 경우로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이다.
힐러리는 예일 로스쿨에서 빌 클린턴을 만나서 깊이 사귀었지만 결혼을 꺼렸다. 로스쿨을 졸업한 힐러리는 닉슨에 대한 탄핵을 준비하던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힐러리는 뜻밖에 워싱턴 DC 변호사 시험에 떨어지자 마음을 바꾸어서 클린턴을 따라서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로 내려가서 변호사 시험을 합격했다. 1976년 클린턴은 아칸소 법무장관 선거에 당선되고 2년 후에는 주지사 선거에도 당선됐다. 두 번째 주지사 도전에는 실패했으나 그 후로 계속 당선이 됐고, 1992년에는 현직인 부시 대통령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1977년 1월, 클린턴이 아칸소 법무장관에 취임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나 힐러리는 아칸소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로즈 로펌(Rose Law Firm)에 취직을 했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힐러리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하겠지만 보수적인 남부 아칸소의 로즈 로펌에는 흑인과 여성 변호사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주 법무장관인 남편 덕분이라는 시각을 피할 수 없었다. 힐러리는 로즈 로펌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파트너가 되는 등 클린턴이 주지사를 하는 동안 승승장구했다. 주지사의 부인이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로펌에서 파트너가 되고 그 로펌이 주 정부 일을 많이 한다면 언론의 주목을 살 만 하지만 남부의 변방인 아칸소에선 그런 의식이 없었다. (아칸소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가난한 주다. 주민 소득수준으로 볼 때 가장 가난한 주는 미시시피다. 어느 해에 미시시피가 아칸소를 이겨서 아칸소가 꼴지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미시시피가 축배를 들었다는 조크가 있다.)
1992년 대선 때는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그런데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자 어떻게 저런 인간이 대통령이 됐냐면서 반드시 탄핵을 시키겠다고, 멜런 가문과 스카이프 가문의 후손인 억만장자 리차드 멜런 스카이프(Richard Mellon Scaife 1932~2014)가 수백만 달러 사비를 들여서 ‘아칸소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렇게 해서 클린턴 부부의 모든 것, 특히 아칸소에서의 행적이 언론을 타게 됐다. 주지사 시절에 클린턴이 미모의 여가수와 불륜관계였고, 폴라 존스라는 여직원을 호텔 방으로 불러내고 바지를 내렸음이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런 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백악관 인턴과의 관계가 드러나자 메이저 미디어도 클린턴 스캔들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부부는 백악관으로 오면서 로즈 로펌의 동료들을 데리고 왔다. 로즈 로펌의 파트너이던 웹스터 후벨(Webster Hubbell 1948~)은 법무차관, 그리고 역시 파트너였던 빈센트 포스터(Vincent Foster Jr. 1945~1993. 7. 20)는 백악관 법률보좌관이 됐다. 아칸소 주립대학 로스쿨을 나온 두 사람은 명문 대학 졸업생들이 장악해온 법무부 등 워싱턴 법조 서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당시 터져 나온 백악관 여행사 문제(백악관 직원과 기자들의 출장 항공티켓을 담당하던 에이전시를 해고하고 아칸소 여행사를 불러 들여서 여행 스케줄이 엉망이 된 사건) 등을 다루면서 이들을 아칸소 패거리라고 무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워싱턴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던 빈센트 포스터는 1993년 7월 6일 권총으로 자살을 했고, 얼마 후 웹스터 후벨도 법무차관직을 사임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러시 림보(Rush Limbaugh 1951~2021) 등 라디오 토크 쇼 진행자들은 빈센트 포스터는 살해당했으며 힐러리와 내연관계라는 식으로 신나게 떠들었다. 보다 중요한 점은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를 지낼 때 로즈 로펌을 중심으로 화이트워터라는 개발 프로젝트를 하던 중 실패해서 일반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은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특별검사가 임명되어 섹스 스캔들과 화이트워터 스캔들을 수사하게 되자 클린턴은 연거푸 터지는 악재로 엉망이 됐고, 결국 상원에서의 탄핵 심판에 이르고 말았다. 상원에서 의석수가 부족해서 공화당은 클린턴을 탄핵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린 탓에 미국의 심장부를 겨루고 다가오는 테러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나중에 듣게 됐다.
화이트워터 사건의 주범인 맥두걸 부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됐으며, 힐러리와 같이 로즈 로펌에서 일했던 웹스터 후벨은 법무차관을 그만 둔 후에 수사를 받으면서 검찰과 협상으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맥두걸 부부가 클린턴 부부의 개입 여부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서 특별검사는 클린턴 부부의 책임에 대해선 파악하지 못했다. 클린턴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맥두걸 부부를 사면했다.
보수 논객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면서 힐러리의 이 같은 흑역사(黑歷史)를 다룬 책을 쏟아냈고, 그 즈음 개국을 한 폭스 뉴스는 이런 내용을 TV에 불러냈다. 이런 것들이 작용해서 힐러리는 2008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패배했고, 2016년에는 본선에서 트럼프한테 패배했다. 로라 잉그레이엄, 앤 코울터 등 보수성향 여성 평론가들은 여권주의자라는 힐러리는 ‘남편 찬스’로 로펌에 취직한 무능한 사람이라고 20년 동안 공격을 해서 힐러리를 무너트리는데 기여했다. 2016년 대선에선 ‘힐러리를 감옥으로’(Hillary to Prison)라는 슬로건마저 등장했고,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돌이켜 보면 힐러리에게 좋은 직장을 제공했던 로즈 로펌이 힐러리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 오른 쪽이 자살한 빈센트 포스터. 트럼프 진영에서 울거 먹고 또 울거 먹었다 .20년 전 일이 힐러리를 망령처럼 괴롭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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