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풀브라이트 논란을 보면서

작성일 : 2022-04-28 17:35조회 : 1,224

풀브라이트 논란을 보면서

교육부총리로 지명된 대학총장을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은데, 엉뚱하게 풀브라이트 재단으로 불똥이 튄 양상이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일가가 혜택을 입은 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두고 그런 의혹이 생겼다니 믿을 수가 없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이 제안해서 시작한 풀브라이트 장학제도는 매우 명예로운 학술교환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굳혔는데, 어떻게 해서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지 착잡하다. 나 역시 1993~94년 겨울 동안 Fulbright Senior Scholar로 조지타운 대학을 다녀 온 적이 있어서 풀브라이트가 이런 논란에 휩싸인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이끌어 온 사람은 프레데릭 캐리어(Frederick Carriere)다. 그는 1969년부터 1993년까지 25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하와이 동서 문화센터와 험프리 언론인 교환제도도 운영했다. 내가 풀브라이트 교환학자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그와 인터뷰를 했던 시점은 1993년 가을이었다. 그 때 그는 자기가 이제 한국을 떠난다면서 나한테 조지타운 대학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아마도 그가 한국에서 거의 마지막 순간에 결재를 한 경우가 나였다고 생각된다.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어에 유창했던 그는 한국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미국에 더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 풀브라이트 위원회는 미국인 대표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에 언젠가는 나한테 심사위원을 해 달라고 부탁해서 서류 심사와 구두 면접을 한 적도 있었다.

엉뚱하게도 풀브라이트를 둘러싼 잡음이 생겨서 프레데릭 캐리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8순 나이임에도 시라큐스 대학에서 석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연구를 하고 기고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한국 사정에 관심이 많을 그가 교육부총리 지명자를 둘러싼 작금의 논란을 보고서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풀브라이트 교환 프로그램은 당사자가 활용하기 나름이다. 내가 조지타운 로스쿨에 교환학자로 있었을 때는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환경과 무역에 관한 논의가 뜨거운 이슈였다. 국제환경법 세미나에 참석하고 미국 변호사협회 환경분과에서 강의를 듣고 환경단체와 연구소를 방문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클린턴 행정부 국무부와 환경보호처(EPA)에선 환경에 관한 국제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위반하는 국가에 제재를 가하자는 논의가 활발했다. 30대 초 대니얼 에스티(Daniel Esty)라는 예일 로스쿨 교수이자 국무부 자문위원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선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그런 논의에 의해 타깃으로 떠오른 나라가 바로 우리였다.

우리나라는 우황청심환과 호골환을 만드는 제약회사가 여럿이 있었다. 여기에는 코뿔소 뿔과 호랑이 뼈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코뿔소와 호랑이를 멸종위기로 몰고 가는 고약한 나라로 찍혀 있었다. 우리나라는 멸종위기종자 국제거래 협약(CITES)에 가입을 하지 않아서 특히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우리 정부가 이 협약에 가입할 조짐이 없자 세계야생기금(WWF) 등 막강한 환경단체들이 국무부와 무역대표부에 펠리 수정법에 근거해서 환경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불량국가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전자제품과 자동차에 보복관세를 부과해 달라고 청원을 내려는 참이었다.

귀국하기 전날 WWF에 일하던 지인들과 만났는데, 이들은 나에게 무역대표부에 청원한 공문 사본을 주면서 클린턴 행정부가 시범 케이스로 그 사안을 다룰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알려줬다. 서울에 돌아 온 다음날 나는 잠실에 있던 환경부에 가서 이러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기자실에서도 브리핑을 했다. 다음날 언론에 그 사안이 일제히 보도가 됐고, 정부는 부처간 대책회의를 급히 소집해서 CITES에 조속히 가입을 하고 호랑이 뼈와 코뿔소 뿔 수입을 전면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뉴스가 미국에도 금방 전달돼서 WWF에서 일하던 친구가 너희 정부가 신속하게 대책을 취해서 놀랐다고 나한데 전화를 했다. 이렇게 해서 한미 간의 충돌을 피했으니까 나는 풀브라이트가 베풀어준 혜택에 대해 ‘밥값’은 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관련 기사를 쓴 환경부 출입기자는 조선일보 김성구(나중에 샘터사 사장을 지냄), 동아일보 정성희(나중에 논설위원을 지냄) 등이었다. 벌써 30년 전 일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전글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다음글고위공직자와 변호사 배우자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