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릴린 먼로

작성일 : 2022-05-25 11:50조회 : 1,263

마릴린 먼로

오는 8월이면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 6. 1~1962. 8. 4)가 사망한지 60년이 된다. 1950년대 최고의 스타이자 섹스 심벌이었던 먼로는 우리에겐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와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 1954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먼로는 야구선수 조지 디마지오,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 등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하지만 한창 나이에 자살을 해서 그 죽음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2000년대 들어서 먼로는 케네디 형제에 의해 피살됐다고 주장하는 유력한 책이 연거푸 출간됐는데, 그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수용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난 4월 말, 넷플릭스가 <The Mystery of Marilyn Monroe : The Unheared Tapes>라는 도큐먼트 영화를 개봉했다. 먼로의 죽음을 추적한 앤소니 서머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녹음 테이프를 통해 먼로의 육성을 전하고 있다. 먼로는 ‘Pres'와 'General'를 자주 언급하는데, 'Pres'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General'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Attorney General)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먼로는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로 인해 침묵을 강요당한 끝에 자살을 했거나 살해됐으며, 그녀가 죽은 8월 4일 밤 현장에 로버트 케네디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관한 공식적 기록은 다음과 같다. 먼로는 LA 고급주택가 브렌우드에 있던 자택에서 1962년 8월 4일 토요일 밤 다량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들었고 자정이 넘은 3시경 가정부 유니스 머레이가 먼로의 방에 불이 켜져 있음을 보고 이상해서 노크를 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자 먼로의 정신과 의사인 랠프 그린선에게 연락을 했다. 잠시 후 그린선이 도착해서 창문을 부수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먼로가 죽어 있음을 보게 됐다. 이어서 먼로의 내과 주치의가 도착해서 역시 먼로가 죽었음을 확인했다. 오전 4시 조금 넘어서 이들은 LA 경찰국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먼로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정됐고, 검시 결과 치사량을 훨씬 넘는 약물이 검출돼서 의도적으로 과다한 약물을 복용하고 자살했으며, 사망 시점은 8월 4일 8시 30분에서 10시 30분 사이로 추정했다. 먼로의 시신을 부검한 LA 부검시관 노구치 박사는 타살 혐의는 없으며 자살로 인한 사망일 것으로 판단했다.

먼로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하더라도 당시 그녀는 영화 제작에 적극적이었기에 때문에 자살을 할 동기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그 날 밤에 일어났던 정황은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고 관련자들이 입을 굳게 다물었기에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 대통령과의 관계는 당시 입소문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케네디 형제와의 관련성이 뜬소문처럼 거론됐지만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에 암살됐고,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6월에 암살됐지만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없어지지 않자 1982년 LA 검찰청은 먼로의 죽음을 다시 조사했지만 결국 자살 이외의 사인을 밝힐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고 말았다.

1982년에 LA 검찰청이 먼로의 죽음을 다시 조사할 때 참여했던 앤서니 서머(Anthony Summer)는 <Goddess: The Secret Lives of Marilyn Monroe>를 1985에 펴내고 그 후에도 꾸준히 보완을 해왔는데, 이번에 넷플릭스를 통해 도큐 영화로 빛을 보게 됐다. 그 외에도 2000년대 들어서 먼로의 죽음을 파헤친 책이 여러 권 나왔는데, 결론은 케네디 형제가 먼로를 죽였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을 할 수 없겠으나, 당시 케네디 백악관은 남베트남 대통령 고딘 디엠과 그의 동생인 고딘 누를 암살하라고 승인했으니 마릴린 먼로를 제거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또한 그런 시대였기에 마피아가 자신들을 배신한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것이다.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는 LA의 태평양 바닷가에 있는 그들과 처남 매부 간인 영화배우 피터 로포드(Peter Lawford 1923~1984)의 저택에서 먼로와 수차례 성관계를 갖았음은 대체로 확인된 사실이다. (피터 로포드는 1954년부터 1966년에 이혼할 때까지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패트리셔 케네디의 남편이었다.) 먼로가 죽던 8월 4일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렀음은 확인되는데, 로버트 케네디가 자동차 또는 헬기로 LA에 와서 먼로를 만나 언쟁을 했고 그로 인해 먼로가 자살을 했을 가능성, 또는 먼로와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자 살해를 지휘했을 가능성이 논의된다. 그리고 FBI와 피터 로포드가 클린업 팀을 조직해서 뒤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백악관 뒷문을 통해 젊은 여인들이 드나들었고, 백악관 풀장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경호실은 이런 일 때문에 기강이 잡히지 않아서 결국 댈러스에서 케네디가 피살되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성적 방탕과 마피아와의 연관성은 케네디의 어두운 이면(裏面)인데, 그가 암살됨에 따라 어두운 면은 묻혀 버리고 ‘살아 있는 신화’(living legend)가 되고 말았다. 폭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보수 평론가들은 케네디 가문이 위선과 가식(假植)으로 얼룩져 있다고 보며, 이런 것을 모른 체 하고 케네디를 우상화하는 뉴욕타임스 등 동부 언론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먼로의 죽음이 케네디 형제와 관련이 있음은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이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케네디 형제를 좋아 하지 않았던 에드가 후버는 대통령의 약점을 잡아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면 케네디 형제의 정적(政敵)이었던 리차드 닉슨은 어떠했을까 ? 닉슨도 물론 알았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라고 지시했음이 드러나서 탄핵을 당할 지경에 처해서 결국 사임하게 되는데, 케네디 형제의 이 같은 비밀을 알고 있던 닉슨의 입장에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젊은 여자 인턴과의 스캔들로 탄핵 심판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빌 클린턴도 자기가 한 일은 케네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억울해 했다.

마릴린 먼로가 죽은 1962년 8월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1974년 8월 사이의 12년 동안 미국 사회의 기준은 이처럼 천지개벽(天地開闢) 수준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가 ‘1970년대 미국’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 법무장관을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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