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워터게이트, 마샤 미첼

작성일 : 2022-06-11 22:01조회 : 1,095

워터게이트, 마샤 미첼

워터게이트 사건 50주년을 맞아 미국에선 스타즈라는 케이블 채널이 미니 시리즈 <Gaslit>을 방영하고 있다. <Gaslit>은 닉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고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닉슨을 재선시키기 위한 선거대책본부(CREEP)를 책임졌던 존 미첼(John Mitchell 1913~1988)의 부인 마샤 미첼(Martha Mitchell 1918~1976)을 중심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루었다. 마샤 미첼 역은 줄리아 로버츠가 맡았는데, 4월 말부터 방송 중이라서 넷플릭스 등에는 방송이 끝난 후에 올라 올 것으로 보인다.

흔히 워터게이트 사건은 워싱턴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파헤쳐서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 밥 우드워드는 당시 FBI부국장이던 마크 펠트(Mark Felt 1913~2008)와 아는 사이였다. 문장력이 딸려서 기자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뻔했던 우드워드에게 특종 기사를 안겨 준 사람이 마크 펠트였는데, 마크 펠트는 자기 나름대로 젊은 기자를 언론 플레이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크 펠트를 알게 된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펠트는 은밀하게 만나자고 했고, 그 후 정부 내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우드워드에게 알려 주어서 워싱턴포스트는 다른 매체보다 앞서서 보도를 하게 됐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초기에 알려진 데는 존 미첼의 부인 마샤의 역할이 있었다. 남부 출신으로 한번 이혼한 후에 존 미첼을 만나서 결혼한 마샤는 남편이 법무장관이 된 후에 거침없는 발언으로 언론, 특히 주변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2류 언론의 주목을 샀다. 마샤는 ‘범죄인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식의 파격적 발언으로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마샤 미첼 현상’이 일었던 것이다. “내 남편은 닉슨을 돌보고 나는 미국을 돌본다”(My husband takes care of Nixon, I take care of America.) 같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2류 언론은 이런 말을 열심히 받아썼다. (요즘 우리나라 언론과 똑같다.) 당시 미국 사회에 퍼져있던 신좌파 반전 운동, 흑인 민권 운동, 그리고 페미니즘에 식상한 남부 여성들과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런 마샤에 대해 열광했다. 그런 현상 때문에 타임지는 마샤를 표지 인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닉슨 백악관과 공화당은 마샤 미첼의 그런 인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공화당 집회와 모금 운동에 동원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기자들이 몰려 왔으니 그만한 흥행 거리가 없었다. 기자들이 마샤를 따라다니고 통화를 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대라서 남편이 집에서 전화를 하면 마샤는 부엌으로 와서 전화기를 조용히 들고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혼자 알고만 있기는 아까운 이야기를 친한 기자들한테 수다를 떨면서 전했다. 자연히 마샤와 통화를 하면 특종 기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나서 기자들이 그녀와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

마샤 미첼과 가장 친했던 기자가 UPI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Helen Thomas 1920~2013)였다. 나이도 비슷한 두 여인은 툭하면 전화를 길게 했고, 그러면 토머스의 단독 기사가 나오곤 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존 미첼은 부인에게 언론 인터뷰를 그만 두라고 큰 소리를 쳤고 마샤가 맞서 싸우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미첼 부부는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 있는 큰 아파트에서 살았다. 워터게이트 콤플렉스는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호텔, 사무실, 그리고 아파트(분양 아파트)로 이루어진 복합 건물이었는데, 미첼 부부는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워터게이트에서 살았던 또 다른 닉슨의 측근은 닉슨의 가족과 같았던 여비서 로즈 매리 우드(Rose Mary Woods 1917~2005)이다. 닉슨을 만나서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토록 닉슨의 충실한 비서로 일한 그녀를 닉슨의 딸들은 이모(aunt)라고 불렀는데, 워터게이트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로즈 매리 우드는 나중에 워터게이트 녹음 테이프 중 지워진 부분에 대해 법정에서 진술을 해서 널리 알려졌다.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선거본부에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1972년 6월 17~18일 밤에 미첼 부부는 워터게이트 아파트에 있지 않았다. 미첼 부부는 LA 부근 뉴포트 비치에 선거 자금 모금을 위해 방문 중이었는데, 6월 18일 아침에 존 미첼은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5명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워싱턴 DC로 급히 돌아갔다. 그러면서 존 미첼은 부인한테 다른 데 가지 말고 호텔 방에 있으라고 하고, 같이 왔던 보안 책임자 스티브 킹(Steve King 1941~)에게 부인을 절대로 내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호텔 방에서 존 미첼이 통화하는 것을 들은 마샤는 무언가 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마샤가 호텔 방에 배달된 LA타임스를 보니까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체포된 5명 중에 남편 사무실에서 일을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제임스 맥코드(James McCord 1924~2017)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마샤는 입이 근지러워서 헬렌 토머스 기자에게 전화를 걸고 남편이 관련된 큰 사건이 터졌다고 이야기하는 차에 스티브 킹이 달려들어서 전화기를 빼앗아 버렸다. 마샤가 다른 방으로 가서 통화를 계속하려 하자 킹은 따라가서 전화 코드를 뽑아 버리고 저항하는 마샤를 유도 선수가 상대방을 바닥에 패대기치듯이 밀쳐 버렸다. 그런 도중에 마샤는 멍이 들고 팔이 가구 모서리에 찢겨서 피가 나왔다. 이런 난리 통에 마샤와 통화를 한 헬렌 토머스가 기사를 쓰자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5인조가 존 미첼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기사나 여러 군데서 나오게 됐고,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여기서 착안을 하고 취재에 들어간 것이다.

LA 호텔에서의 감금 사태 후 존 미첼은 그냥 집을 나오고 마샤와 이혼 소송 절차에 들어갔다. 이혼을 당한 후 무일푼이 된 마샤는 평소에 많이 피던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려서 1976년 57세 나이로 사망했다. 마샤 미첼은 트럼프 정부 들어서 다시 기억하게 됐는데, 그것은 마샤 미첼을 호텔 방에 가두고 바닥에 패대기쳤던 스티브 킹을 트럼프 대통령이 체코 주재 대사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원래 FBI 요원이던 스티브 킹은 닉슨 재선대책본부(CREEP)의 보안 요원으로 옮겼다가 LA 호텔에서 마샤 미첼을 감금하고 감시하던 중 마샤 미첼을 마구 다루게 됐다. 그 후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가서 사업을 하면서 공화당 활동을 계속한 스티브 킹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이 마샤 미첼을 마구 다루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미 45년이나 지난 일이고 해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스티브 킹은 무난히 인준이 되어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3년 동안 대사를 지내고 은퇴했다.

- 사진 (1) 실제의 마샤 미첼과 존 미첼, (2) 미니 시리즈 중 미첼 부부. 존 미첼 역으로 나온 숀 펜과 마샤 미첼 역으로 나온 줄리아 로버츠. 1970년대에 유행하던 긴 모피 코트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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