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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자
작성일 : 2022-06-13 09:15조회 : 974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자
현직 대통령이 사임을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자체로만 보면 우스운 것이었다. 도무지 무슨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한 밤에 민주당 전국위 사무실에 침입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그날 밤 침입을 한 5인조는 5월 말에도 침입을 해서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으나 하나는 불량이었고, 다른 한 대에 설치한 장치를 통해 엿들었던 내용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남녀 간의 섹스 농담뿐이었다. 민주당은 그런 대화가 여직원이 남자 친구와 한 농담이었다고 둘러 댔다. 흑인 민권과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민주당의 본부 사무실이 비싼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었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여하튼, 1972년 6월 17일~18일 밤에 워터게이트 빌딩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한 제임스 맥코드(James McCord 1924~2017) 등 5명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복경찰에 의해 체포돼서 워싱턴 DC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워터게이트 빌딩 주변에는 이번 작전을 지휘한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 1918~2007)와 고든 리디(Gordon Liddy 1930~2021)가 있었다. 두 사람은 상황이 심각함으로 깨닫고 워터게이트 건물 건너편 호텔 방에서 현장을 지켜 보던 알프레드 볼드윈에게 장비를 챙겨서 철수하라고 지시하고 황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18일 아침, 워싱턴 DC 경찰은 야간에 양복 차림으로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침범한 5명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훔친 것이 없었고, 100달러 지폐로 2300 달러를 갖고 있었으니 절도범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 돈은 혹시 경비원에게 들키게 되면 건네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날 흑인 경비원은 귀찮아서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말았다. 당시 경비원의 주급은 80달러라서 2300달러는 8개월 봉급이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아침에 더글러스 캐디라는 젊은 변호사가 경찰서로 찾아와서 자기가 이들 5명의 변호사라면서 면담을 요구한 것이다. 유치장에 갇혀 있는 5명이 외부와 전화를 한 적이 없는데도 어떻게 알고 변호사가 나타났으니 경찰은 이들에게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고 관할 검사에게 연락을 했다. 미국에선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생기면 경찰은 초기에 검찰에 연락해서 담당 검사와 긴밀하게 협력하는데, 워싱턴 DC는 지방정부가 없기 때문에 관할 검찰은 바로 법무부였다. 이 변호사는 하워드 헌트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갔던 것인데. 5명을 보석으로 빼내서 곧장 도망시킬 계획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바로 그 다음날 이 사건은 법무부 형사국에 보고가 됐고, 법무부 담당 검사는 이 사건을 FBI에 통보했다. 법무부 형사국장 헨리 피터슨(Henry Petersen 1921~1991)과 FBI 부국장 마크 펠트(Mark Felt 1913~2008)는 심상치 않은 이 사건을 보고 받았다. 헨리 피터슨은 워터게이트 특별검사가 임명되기까지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지휘하게 되며, 마크 펠트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에게 정보를 알려 준 ‘Deep Throat'이었음이 판명된다. 헨리 피터슨은 이 사건이 결코 그냥 무마되지 않을 것이라고 백악관에 알려 준다. 반면에 마크 펠트는 전부터 알고 있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상황에 대해 힌트를 주어서 우드워드가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헨리 피터슨은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에 나오는 워터게이트 기사의 원천이 마크 펠트일 것이라고 백악관에 알려 주어서 닉슨과 백악관 참모들은 우드워드 기자의 비밀취재원인 ’Deep Throat'가 마크 펠트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펠트를 해임하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보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제임스 맥코드는 공군 중령 출신으로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했고 CIA에서 일하다가 1972년에 백악관에서 보안 관련 일자리 제안을 받고 CIA를 사직했다. 하워드 헌트는 오랫동안 CIA에 있으면서 과테말라 우익 쿠데타, 쿠바 피그스 만 침공 등 현장 작전에 참여한 유능한 CIA 요원이었는데, 퇴직 후 보안회사에서 일하다가 1971년 여름에 백악관의 찰스 콜슨(Charles Colson 1931~2012) 보좌관에 의해 '특별수사팀'을 이끌도록 채용됐다. 고든 리디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FBI에 들어가서 수사관으로 경력을 쌓았고 포드햄 로스쿨을 다녀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는데, FBI에서 퇴직한 후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다가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자 백악관 국내문제 보좌관실에서 보안관련 일을 하던 중 공화당 선거대책위원회(CREEP)가 발족하자 '특별수사팀‘에 합류했다.
말하자면, 헌트, 리디, 그리고 맥코드는 CIA와 FBI에서 일했던 유능한 전직 정보/수사 요원들이었다. 이들을 백악관과 공화당 선대위(CREEP)로 이끈 사람은 찰스 콜슨 보좌관이었다. 조지워싱턴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인 콜슨은 닉슨의 대통령 선거를 도왔고, 닉슨 정부가 들어서자 백악관 특별보좌관이 됐는데, 닉슨의 정적(政敵)을 감시하고 그들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신에게 적(敵)이 많다고 생각한 닉슨이 찰스 콜슨을 특별보좌관으로 임용한 것이 결국에는 닉슨을 파멸로 몰아간 셈이다.
찰스 콜슨은 하워드 헌트 등 7명으로 구성된 백악관 특별수사팀을 관리했는데. 이 팀을 기밀 누설을 막는다는 의미로 ‘배관공(The Plumbers)’이라고 불렀다. 콜슨은 닉슨의 정적 리스트(Enemy List)를 작성했는데. 민주당 정치인들 뿐 아니라 흑인 민권운동가와 신좌파 운동가는 물론이고 폴 뉴먼 같은 배우와 문화계 언론계 인사도 포함시켰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리스트가 공개됐는데, 리스트 작성과 관련되어서 기소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직권남용죄가 없어서 이런 리스트 작성 자체는 범죄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닉슨은 왜 찰스 콜슨으로 하여금 이런 팀을 운영토록 했는가 ? (계속)
- 사진 : 고든 리디, 하워드 헌트, 제임스 맥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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