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윌리엄 렝퀴스트

작성일 : 2022-06-18 14:54조회 : 923

윌리엄 렝퀴스트

닉슨은 재임 중 미중 관계와 미소관계 등 대외관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1971년 8월 ‘달러화 금태환 중지’ 같은 중요한 경제정책을 결정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닉슨은 또한 조지 H. W. 부시, 조지 슐츠 같은 나중에 미국 정치의 주역이 되는 인물을 발굴해서 키워냈다. 닉슨이 남긴 또 하나의 큰 유산(legacy)은 윌리엄 렝퀴스트를 대법관으로 임명해서 미국 대법원이 보수화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1971년 10월 법무부 차관보(국장급)이던 윌리엄 렝퀴스트(William H. Rehnquist 1924~2005)를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상원 청문을 거쳐 렝퀴스트는 1972년 1월 대법관이 되었고 1986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임명돼서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그는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부터 9명의 대법관 중 가장 보수적이었다. 그 후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함에 따라 미국 대법원은 전에 없이 보수화되었다. 닉슨이 렝퀴스트를 대법관으로 임명함으로써 1960년대까지 진보적 대법관들이 이끌어 왔던 대법원이 본격적으로 보수화하기 시작했으니 이 역시 닉슨이 남긴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렝퀴스트가 대법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닉슨 정부가 들어서자 그가 법무부의 법무당당관실(Office of Legal Affairs)을 책임지는 차관보(Assistant Attorney General)가 됐기 때문이다. 닉슨 행정부 시절 법무부에는 장관(Attorney General), 법무차관(Deputy A-G), 송무차관(Solicitor General), 그리고 형사 민권 반독점 등 국(Division)과 실(Office)을 책임지는 열 몇 명의 차관보(Assistant A-G)가 있었다.

윌리엄 렝퀴스트는 위스콘신 출신으로 작은 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해서 2차 대전 중에는 국내에서 복무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스탠포드와 하버드를 다녀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해서 1952년에 졸업한 후 보수 성향인 로버트 잭슨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1953년, 렝퀴스트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로펌에 취직을 했다. 그 로펌의 파트너 데니슨 킷첼(Denison Kitchel 1908~2002)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공화당원이며 영향력이 있는 변호사였는데, 피닉스에서 백화점을 경영하다가 상원의원이 되는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와 오랫동안 교분이 깊었다. 골드워터가 1964년 대통령 선거에 나가자 킷첼은 골드워터 선거운동을 지휘했다. 로펌의 파트너인 킷첼이 골드워터 선거 운동을 지휘하게 되자 렝퀴스트도 골드워터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선거 운동에 가담했다.

골드워터는 자신과 가까운 리차드 클라인딘스트(Richard Kleindienst 1923~2000) 변호사에게도 선거운동을 부탁했다. 클라인딘스트는 애리조나 출신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후 고향 피닉스에서 로펌을 열어서 성공했으며 애리조나 주 공화당 위원장을 지냈고, 1964년 대선 때 같이 열린 애리조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64년 대선 과정에서 렝퀴스트는 클라인딘스트와도 잘 알게 됐다.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는 존슨 대통령에게 패배했고, 골드워터를 도운 킷첼, 클라인딘스트, 그리고 렝퀴스트는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그리고 4년이 흘러서 1968년 대선에서 닉슨이 승리했다. 공화당 정권이 탄생함에 따라 1964년 대선에서 활약한 애리조나 팀에게도 변화가 닥쳐왔다. 클라인딘스트와 렝퀴스트가 법무부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사진 : (1) 1972년 1월, 새로 대법관으로 인준된 루이스 파월(왼쪽)과 윌리엄 렝퀴스트(오른쪽)에게 대법관 임명장을 전달하는 닉슨 대통령.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파월은 무난하게 상원 인준을 통과했으나 렝퀴스트는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가 많았다.
(2) 1986년 6월, 레이건 대통령이 렝퀴스트 대법관(오른쪽)을 신임 대법원장으로, 안토닌 스칼리아 연방항소법원 판사(왼쪽)를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함을 발표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두 사람은 그해 9월 상원 인준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됐고, 이로서 대법원의 보수화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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