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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에이브 포터스 사건

작성일 : 2022-06-19 19:33조회 : 956

1969년 에이브 포터스 사건

닉슨이 미국에 남긴 가장 큰 유산(legacy)은 윌리엄 렝퀴스트를 대법관으로 임명해서 대법원의 보수화를 촉진한 것이다. 따라서. 애리조나에서 변호사를 하던 렝퀴스트를 닉슨이 법무부 차관보로 임명함으로써 역사의 물길을 바꾸어 놓은 셈인데, 닉슨도 렝퀴스트가 대법관이 되고 대법원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다.

법무부에는 형사국, 반(反)독점국, 민권국, 법무실 등 국실(局室)이 있는데, 정치적 임명직인 차관보가 각 국실을 이끌어나간다. 윌리엄 렝퀴스트(William H. Rehnquist 1924~2005)는 상원 인준을 거쳐서 1969년 1월 29일자로 법무실(Office of Legal Counsel)을 담당하는 차관보로 업무를 시작했다. 법무담당 차관보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연방판사로 임명할 수 있는 법률가를 추천하는 기능이다. 미국의 대법관 등 연방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스스로 사퇴하거나 탄핵을 당하지 않는 한 종신직이다. 대법관을 위시한 모든 연방판사는 상원의 동의를 얻어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인준 청문을 하는 상원 법사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통령은 연방법관을 지명하기 전에 법무장관과 백악관 참모의 의견을 참조한다.

닉슨 행정부 초기 몇 달 동안에 법무부는 진보적 성향으로 유명한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의 비리를 파악해서 그를 사임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렝퀴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터스가 사임함에 따라 닉슨은 1969년~1971년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게 되는데, 대법원으로 가는 티켓 4장 중 마지막 것을 렝퀴스트가 잡았다. 워터게이트로 닉슨은 사임하고 미첼 법무장관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렝퀴스트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대법관이 되고 나중에 대법원장이 됐으니 그야말로 천운(天運)을 타고 난 사람이다.

닉슨은 1960년대 대법원이 지나친 권한을 행사해 왔다고 생각했다. 얼 워렌(Earl Warren 1891~1974. 1953~1969년 6월 대법원장 재임) 대법원장이 이끌어 온 대법원은 흑백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판시하고 형사피의자/피고인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등 진보적 판결로 미국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닉슨을 위시한 보수적 정치인과 법률가들은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판결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을 엄격하게 해석해서 적용해야지 사실상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워렌 대법원의 주축인 진보 대법관들을 비난했다.

닉슨은 얼 워렌을 잘 알았다. 얼 워렌은 공화당원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다. 아이젠하워는 워렌이 그렇게 진보적인 판결을 할 줄은 몰랐다고 후회할 정도로 공화당 정치인에게 워렌은 일종의 배신자였다. 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으로 당선돼서 부통령이 된 닉슨도 물론 그런 감정을 갖고 있었다.

1968년 들어서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렌은 존슨 이 차기 대법원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의를 표명했고, 6월 21일 존슨 대통령은 그것을 공표했다. 워렌은 차기 대법원장이 인준이 되면 자기는 사임하겠다고 했다. 워렌은 닉슨이 대통령이 되면 보수적 법률가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앞당겨 은퇴하고 존슨이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토록 할 생각이었다. 6월 26일, 존슨 대통령은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고 포터스 대법관의 후임으로는 텍사스 출신의 호머 손버리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유태인인 에이브 포터스(Abe Fortas 1910~1982. 1965. 10~1969. 5. 14 대법관 재직)는 변호사로 명성이 높았고, 존슨 대통령과는 오랜 친구이자 법률 대리인이었다. 워렌 대법원장은 그런 포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다. 1965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이던 애들라이 스티븐슨이 사망하자 존슨 대통령은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을 설득해서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하고 골드버그의 후임으로 에이브 포터스를 임명했다. 포터스가 대법관이 됨에 따라 워렌 대법원장과 대법관 4명은 다수파 진보 블록을 이루어서 Miranda v. Arizona 같은 진보적 판결을 연거푸 내렸다. 워렌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포터스가 대법원장이 되어 지속해 주기를 원했다.

그해 11월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닉슨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준 청문회가 열리자 공화당 의원들이 포터스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차기 대법원장은 다음 대통령이 지명토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중 포터스가 고액 보수를 받고 순회 강연을 했음이 밝혀져서 논란이 커졌다. 워렌 대법원장은 후임이 결정되면 사임하겠다고 해서 과연 대법원장이 사임을 했느냐도 논란이 됐다. 대법원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자 부담을 느낀 포터스는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지명을 철회했다. 이렇게 해서 차기 대법원장은 다음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그리고 그 해 11월 대선에서 닉슨이 당선됐다.

1969년 5월, 라이프지(誌)가 포터스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부터 알던 금융계 인사로부터 매년 2만 달러씩 자문비를 받는 계약을 했다고 폭로했다.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고, 하원에선 포터스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시작됐다. 파문이 커지면 대법원 자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워렌은 포터스에게 사임을 권했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포터스를 기소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기소 가능성 여부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5월 19일, 포터스는 사표를 제출하고 대법원을 떠났다. 워렌 대법원장도 후임이 인준을 마치는 대로 은퇴할 에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닉슨 대통령은 후임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대법관 1인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백악관 법률비서관이던 존 딘(John Dean 1938~)은 2001년에 나온 책을 통해서 포터스가 사임하게 되는 계기가 된 라이프지 기사는 존 미첼 법무장관과 렝퀴스트 차관보가 흘린 것이라고 밝혔다.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해서 내사를 하고 언론에 흘려서 사퇴를 유도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포터스가 사퇴를 밝히자 닉슨은 기뻐했으며, 미첼 법무장관과 렝퀴스트 차관보는 축배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FBI 국장이던 에드가 후버도 기뻐했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대법원을 나온 후 포터스는 로펌을 세워서 다시 변호사 업무를 했는데, 몇 번은 자신이 대법관으로 있었던 대법원에서 나가서 변론을 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세법 변호사였고, 자식이 없는 두 사람은 조지타운에 있는 큰 저택에 살았다. 포터스는 존슨이 1973년에 사망할 때까지 자주 만나는 등 친밀한 교분을 유지했다. 회고록 집필을 거부한 포터스는 1982년에 72세로 사망했다.

- 사진(1) 대법관 법복 차림의 포터스 (2) 포터스와 존슨 대통령. 두 사람은 이 정도로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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