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럴드 포드

작성일 : 2022-06-27 09:57조회 : 992

제럴드 포드

닉슨이 사임한 후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Jr. 1913~2006)는 원래 성(姓)이 포드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포드가 태어난 후 곧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머물다가 재혼을 했고, 따라서 ‘포드’는 양아버지 성(姓)을 따른 것이다. 포드 가족은 미시건 주 그랜드 래피즈에서 살았다. 운동을 좋아한 포드는 풋볼 선수를 하면서 미시건 대학을 다녔고, 풋볼 코치를 하면서 예일 로스쿨을 다녔다. 변호사로 일하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해서 함정장교로 임관한 후 경(輕)항공모함 몬터리함(艦)을 타고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다. 필리핀 근해와 레이테 등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인 몬터리함은 1944년 12월 태풍을 만나서 거의 침몰될 뻔 했다. (그 때 구축함 3척이 풍랑으로 침몰해서 미군 800명이 사망했다.)

태풍으로 인해 함재기가 몽땅 침수되고 선체가 파손된 몬터리함은 하와이로 돌아왔다. 전쟁이 끝나자 포드는 전역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무공훈장을 탄 참전용사이며 예일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인 포드는 1948년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서 하원의원이 됐다. 포드는 1972년 선거까지 13선을 역임했다. 포드는 자신보다 하원에 2년 먼저 들어온 닉슨과 가까웠다. 자기보다 늦게 하원에 들어온 멜빈 레어드(Melvin Laird Jr. 1922~2016)와도 가까웠다. 닉슨, 포드, 그리고 레어드는 모두 2차 대전 중 해군 장교로 태평양에서 싸운 전우였다.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후 소장파 의원들의 벌인 쇄신 운동 덕분에 포드는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 때 포드를 적극적으로 밀어 준 의원이 레어드였다. 포드의 꿈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어서 하원의장이 되는 것이었다. 1968년 대선에서 승리한 닉슨은 레어드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1972년 대선에서 닉슨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그 후 워터게이트 파문이 커져서 백악관은 위기에 처했다. 1973년 4월 30일, 닉슨은 밥 홀드먼 비서실장과 존 얼릭먼 국내문제 보좌관의 사임을 발표했다. 4년 간의 국방장관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있던 레어드는 닉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백악관 국내문제 보좌관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워터게이트 파문이 갈수록 커지던 중 다른 큰 문제가 발생했다.

1973년 7월, 메릴랜드를 관할하는 연방검찰은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지사를 할 때부터 사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편의를 제공했으며, 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뇌물을 받았다고 엘리옷 리차드슨(Elliot Richardson 1920~1999) 법무장관에게 보고했다. 리차드슨 장관은 애그뉴에 대한 기소가 불가피하다고 닉슨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얼마 후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스피로 부통령은 이를 부인했으나 한편으로는 법무부와 협상을 진행했다. 애그뉴가 사임하는 조건으로 법무부는 기소 죄목을 줄여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10월 9일, 애그뉴 부통령은 사임했고, 따라서 현직 부통령을 기소해야 하는 상황은 면했다.

1967년에 채택된 헌법 수정 27조는 부통령이 비어있는 경우에 대통령은 부통령 후보를 지명해서 상하원 각각 동의로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에 의거해서 닉슨은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게 됐다. 존 코널리(John Connally Jr. 1917~1993) 전 재무장관,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 록펠러 뉴욕 주지사, 그리고 포드와 레어드가 후보로 부상했는데, 닉슨은 포드를 선택했다. 코널리는 민주당 출신이라서, 레이건과 록펠러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배제됐다. 자신은 직선적 성격 때문에 곤란하다고 생각한 레어드가 포드를 추천해서 포드로 낙착된 것이다. 닉슨은 포드를 부통령 후보로 발표하고 의회에 인준 동의를 요청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하루하루 확대되어 갔다. 10월 30일, 닉슨이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라고 법무장관에게 명령하자 리차드슨 법무장관과 러클샤우스 법무차관은 불복하고 사임했고, 법무부 3인자인 로버트 보크가 콕스를 파면했다. 언론은 이를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하원 법사위는 탄핵 절차를 시작했고, 11월 12일자 타임지는 닉슨의 사임을 촉구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을 싣지 않던, 공화당에 우호적이던 타임지가 그런 사설을 게재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포드가 부통령이 되면 닉슨이 사임하거나 탄핵을 당하는 경우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에서 FBI와 국세청(IRS)은 후보자 검증에 들어갔다. 의회에 제출된 1700쪽이나 되는 역대급으로 상세한 검증 보고서는 포드가 정직하고 성실하며 솔직한 사람임을 입증해 주었다. 상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벨라 압주그 등 급진적인 민주당 의원 몇몇은 포드를 흠집 내려고 했으나 무리였고, 그 해 11월 27일과 12월 6일에 상원과 하원은 각각 인준 동의를 결의했다. 12월 10일 포드는 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제출된 백악관 녹음 테이프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를 지시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실망한 레어드는 백악관 보좌관직을 내어 놓고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갔다. 하원 법사위가 탄핵 소추를 결의하고 공화당 의원들마저 닉슨에 등을 돌리자 8월 8일, 닉슨은 사임을 발표했고, 다음날 포드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포드는 그 후 2년 4개월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는데, 그 동안 닉슨에 대한 사면, 남베트남의 공산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닉슨을 사면해서 지지도가 폭락했고 그 후 회복을 하지 못했으나 포드는 닉슨을 사면하지 않고서는 자기는 마음의 부담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포드는 197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경쟁해서 후보가 되어 본선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에 패배했다.

포드는 소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부인 베티 여사와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고 이들을 힘들여 키운 가장이었다. 포드는 1955년에 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 주택가에 평범한 집을 마련해서 살았다. 포드 가족은 인근 주민과 격의 없이 지낸 중산층 가정이었다. 현재 부통령이 거주하고 있는 공관은 1977년부터 사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포드는 부통령이 된 후에도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63세 나이로 건강한 포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자 포드 부부가 어디에 정착할 지가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웃과 잘 어울리고 살아온 포드이기에 포드 가족이 20년 동안 살아온 알렉산드리아 시, 그리고 포드의 고향이자 지역구였던 미시건 주 그랜드 래피즈 시는 모두 포드가 자기들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 사진: 포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다음날 백악관에서 만난 닉슨과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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