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식회사 제럴드 포드’

작성일 : 2022-06-27 10:06조회 : 951

‘주식회사 제럴드 포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취임일을 기다리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다. 카터, 레이건,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포드, 카터, 그리고 부시의 표정을 보면 어색하기가 이를 데 없다.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무엇보다 자기의 기념 도서관(Memorial Library and Museum)을 세우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 기념 도서관/기념관은 퇴임한 대통령이 모금을 해서 건설해야 하는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같이 워낙 인기가 높았던 대통령에게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모든 전직 대통령이 레이건 같지는 않다.

대통령으로 2년 4개월을 보낸 제럴드 포드도 기념 도서관과 기념관을 세우는 것을 퇴임 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포드는 모금을 위해 정열적으로 노력했다. 포드는 한 곳에 기념관과 도서관을 세운 다른 대통령과 달리 기념관은 자신의 고향인 그랜드 래피즈에 세우고 기념 도서관은 미시건 대학 캠퍼스에 세우기로 했다. 미시건 주 정부가 3백만 달러를 출연해서 총 1500만 달러가 투입된 기념관과 도서관은 197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81년 9월에 문을 열었다. 개막식에는 레이건 대통령 부부와 부시 부통령 부부가 참석했으나 정작 포드를 부통령으로 발탁해서 대통령이 되게 한 닉슨은 참석하지 않았다. (닉슨은 포드를 대통령 감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닉슨은 존 코널리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싶었는데, 민주당 입장에선 배신자인 코널리를 부통령으로 지명하면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가 부결시킬 것이라고 멜빈 레어드가 반대해서 닉슨은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코널리는 텍사스 주지사를 지낼 때 댈러스를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차를 타고 있다가 오스월드의 총격으로 부상을 당했다. 닉슨의 기념도서관은 1990년 7월에야 그의 고향 요바 린다에서 문을 열 수 있었다.)

포드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집 외에도 지역구인 그랜드 래피즈에 오래된 집과 스키장으로 유명한 콜로라도 바일에 작은 아파트, 그리고 주식 등 총 20만 달러 자산을 갖고 있었다. (2020년 가격으로 85만 달러에 해당하니까 중산층 수준이다.) 카터의 취임식에 참석해야 하는 끔찍한 일을 상상하고 있던 포드에게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포드에게 고액을 제시하고 강연을 부탁하고, 기업에 이사로 취임해 달라는 하고, 고액의 보수를 제시하고 인터뷰를 하자는 등 온갖 부탁이 물 밀 듯이 몰려 온 것이다. 케네디는 암살됐고, 존슨은 심장병으로 병들어 있었고, 닉슨은 불명예스럽게 사임했으니 미국은 오랜만에 멀쩡하게 퇴임하는 대통령을 갖게 됐는데, 전직 대통령의 화폐적 가치(monetary value)가 이렇게 높은 줄은 포드 자신도 몰랐다.

그 때 포드에 접근한 노먼 브로코라는 에이전트가 있었다. 브로코는 포드에게 “당신은 최소한 9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하자 포드는 솔깃해서 브로코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면서 포드는 혹시 1980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해 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기업 임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게 된 데는 백악관을 나와서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포드는 더 이상 이웃과 어울리던 평범한 포드가 아니었다. 포드 부부는 백악관을 나온 후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Rancho Mirage)에서 살고 싶어 했다. 팜 스프링 부근에 있는 란초 미라지는 유명한 배우와 프로 골프 선수 등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고, 포드가 좋아하는 골프의 천국이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 연금으로서는 도저히 그곳에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방법이 생긴 것이다.

유능한 에이전트에 힘 입어 포드는 부부의 회고록 선인세로 1백만 달러를 받았고, 5년간 NBC 방송과 인터뷰 등 출연계약으로 2백만 달러를 받았고, 매번 1만 달러에서 1만 5천 달러를 받는 순회 강연을 하게 됐다.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포드 부부는 순식간에 갑부(甲富)가 됐다. (NBC는 나중에 포드와 맺은 계약을 위약금을 주고 파기했다. 말 재주가 없고 밋밋한 포드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다른 채널로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1980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다시 부통령이 되는 가능성도 사라지자 포드는 부담 없이 돈 벌이에 나섰다. (198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레이건은 포드를 러닝메이트로 삼는 방안을 검토했고, 거기에 포드도 솔깃한 적이 있었다. 레이건은 결국 조지 H.W.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삼아서 본선에서 대승(大勝)을 거두었다.)

1980년 후반기부터 포드는 AMAX,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여러 회사의 이사와 임원을 맡았다. 이 회사들은 이름만 걸어 놓은 포드에게 후한 연봉을 주어서, 1980년 한해 동안 포드는 대통령 연금을 포함해서 50만 달러 수입을 올렸고, 1981년에는 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전직 대통령법은 전직 대통령에게 각료급 급여를 줄뿐더러 30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서진 비용과 3만 달러 한도의 여비를 제공하는데, 포드는 이것을 악착같이 찾아서 썼다. 전직 대통령 급여와 비서진 급여와 경호 비용, 그리고 여비로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비용은 최초 몇년간은 최대 연간 5백만 달러인데, 포드는 이 비용을 최고한도까지 알뜰하게 찾아서 썼다. 겨우 2년 4개월 동안 대통령을 한 사람이지만 전직 대통령 혜택을 찾아 쓰는 데는 탁월했다

재정적으로 윤택해 진 포드 부부는 69만 달러를 들여서 란초 미라지에 저택을 지었다. 콜로라도 바일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팔고 100만 달러짜리 펜트하우스 아파트를 샀으며, 부근 비버크릭에 거대한 별장을 지었다. 원래 갖고 있던 그랜드 래피즈에 있던 돈도 되지 않는 집은 기념재단에 기부하고 알렉산드리아에 갖고 있던 집은 개인에게 매각했다. 대통령 2년 4개월을 하고 난 덕분에 포드는 이처럼 거부(巨富)가 됐다.

포드의 이런 행각(行脚)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찍이 1977년에 워싱턴포스트에는 포드가 ‘포드 주식회사’를 개업한 것 같다면서, 대통령 직위에 있었음을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고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1980년 대선에서 낙선한 카터는 포드가 전직 대통령임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강연 등으로 돈을 벌지만 자기는 하비타트 운동과 카터 센터 운영 등 공익을 위해 쓴다고 주장했다. 1983년에는 뉴욕타임스가 포드가 ‘1인 재벌 기업’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1989년에는 더욱 민망한 비난이 제기됐다. 1989년, 포드와 카터는 파나마 대통령 선거를 참관하러 같이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파나마를 방문했다. 선거 당일 포드는 일찍 자리를 뜨고 골프를 쳤다. 백악관을 나온 포드는 유명한 골프 선수와 골프를 치면서도 광고 수입을 올리곤 했는데, 그 버릇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카터는 선거 개표 과정을 꼼꼼하게 살피고 부정 선거 증거를 잡아서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면서 카터는 포드가 그 모양이라고 비난을 했다.

이런 비난에 난처해진 포드는 자기 이름을 붙인 골프 대회를 열어서 수입금을 기부하는 등 자선사업에도 돈을 썼다. 하지만 여론은 포드에 대해 냉랭했다. 포드의 행각에 자극이 되어 의회에는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전직 대통령은 연금 급여를 박탈하거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지출 상한선을 정하는 법안이 제출되기 시작했다. 포드는 2006년 8월 93세로 사망했다. 63세에 대통령을 그만 두었으니까 무려 30년 동안 전직 대통령 혜택을 입고 사망한 것이다.

불과 몇 년 동안 대통령을 했다고 오랜 세월 동안 납세자 돈으로 그렇게 예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점이 많음을 잘 보여 준 사람이 포드인데, 그런 논란은 클린턴과 오바마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역시 과연 얼마나, 또 얼마 동안이나 전직 대통령과 그 잔존 배우자에게 국민세금으로 급여를 주고 비서와 기사를 붙여주고 경호를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몇 년 지나면 암살할 이유나 가치 그 자체가 없어지며, 전직 대통령의 유족은 애당초 위해를 가할 이유 자체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 사진 (1) 포드가 살았던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 저택 (2) 콜로라도 바일 부근의 포드 별장. 두 건물 모두 나중에 개인에게 팔렸다.

이전글지미 카터 은퇴 생활

다음글제럴드 포드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