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이건 은퇴 생활

작성일 : 2022-06-30 11:44조회 : 962

레이건 은퇴 생활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할리우드 배우를 할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고, 주지사 시절에는 새크라멘토에 있는 관사에 거주했다. 주지사 임기가 끝나갈 무렵 레이건은 산타바버라 부근에 있는 랜초 델 시엘로(Rancho del Cielo)를 527,000 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주택, 마구간, 헛간, 그리고 작은 호수가 있는 총 면적 688 에이커인 이 랜치를 구입하기 위해 산타모니카 부근에 갖고 있던 랜치를 매각했다. 주지사 임기를 마친 레이건 부부는 이 랜치를 생활 근거지로 삼았으나 정치 일정에 따라 LA는 물론이고 워싱턴에도 장기간 머물러 살았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레이건 부부는 이곳에 자주 머물렀고, 엘리자베스 2세 부부, 마가릿 대처, 그리고 고르바쵸프를 초대하기도 했다.

레이건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낸시(1921~2016) 여사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거지 벨에어(Bel-Air)에 있는 저택에 자리를 잡았다. 고급 주택단지에 있는 쾌적하고 넓은 이 주택은 레이건이 산 것은 아니었다. 레이건이 두 번째 임기를 마쳐 갈 때 레이건을 지지하는 기업인 몇 명이 250만 달러를 주고 사서 레이건 부부에게 리스를 해주었다. 말하자면 레이건 부부는 빌려서 산 것이다. 레이건 부부는 이 저택과 산타바버라 랜치를 왕래하면서 은퇴 생활을 즐길 생각이었다. 레이건은 퇴임 후 2년 만에 <한 미국인의 삶>(An American Life)을 펴냈다. 회고록은 당연히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1년 4월, LA 서북쪽 시미 밸리에 기념도서관이 건립됐다. 워낙 후원자와 지지자가 많아서 기념도서관 건립에 어려움은 없었다.

은퇴 후에도 레이건은 공화당 행사에 간혹 참석해서 인사말을 했고 199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다. 1992년 말부터 건망증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는데, 레이건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행사는 1994년 2월 닉슨의 영결식이었다. 1994년 8월, 의사들은 레이건이 알즈하이머라고 공식적으로 진단했다. 그해 11월 중간선거를 며칠 앞두고 레이건은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있음을 밝히는 고별사를 발표했다. 이 고별사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다수석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그 후 점차 증세가 나빠졌으며, 2000년부터는 벨에어 저택에서만 머물렀다. 레이건이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원한 낸시 여사는 방문객을 일체 받지 않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레이건은 자신이 더 이상 랜치에서 생활할 수 없음을 알고 랜치를 매각하기로 했다. 레이건 부부는 1995년에 마지막으로 랜치에 머물렀고, 이듬해 랜치는 ‘Young America's Foundation'이란 단체에 매각됐다. 젊은 세대에게 보수 철학과 레이건 정신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이 재단은 레이건을 지지하는 부유한 사업가들이 출연한 자금으로 랜치를 매입했고, 레이건 부부가 살았던 상태 그대로 보존해서 기념관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레이건은 2004년 6월 벨에어 자택에서 사망했다. 따라서 레이건은 15년 동안 전직 대통령 연금을 받은 셈이다. 미국은 오랜만에 전직 대통령 국장(國葬)을 치렀고 레이건의 유해는 기념도서관 부근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다. 낸시 여사는 벨에어 저택에서 남편이 살던 상태 그대로 12년을 혼자 더 살고 2016년 3월 94세로 사망했다. 낸시 여사는 대통령은 자기 남편이 한 것이라면서, 전직 대통령 배우자에 주어지는 연금을 사양했다. 혼자 사는 동안 낸시 여사는 몇 차례 공개 행사에 모습을 보였는데, 비록 주름살은 늘었지만 우아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낸시 여사가 사망하고 나서 벨에어 저택은 1,500만 달러에 억만장자 사업가에게 매각됐다. 이 저택에서 레이건 부부가 쓰던 가구, 서적, 집기와 장식품 등 모든 물건은 크리스티 경매에 붙여졌고 약 200만 달러에 달한 경매대금은 레이건 기념 재단에 기부되었다. 레이건 부부의 마지막 재정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레이건이 살아 있을 때에는 전직 대통령 연금 외에는 다른 수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랜치를 매각한 대금과 낸시 여사가 부친한테서 상속한 재산으로 10년에 걸친 알츠하이머 투병 생활과 레이건 사후 12년간의 낸시 여사의 생활비와 주거비를 충당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레이건은 연임에 성공하고 자신의 부통령이던 부시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줌으로써 한 세기에 한번 나오기 어려운 기록을 세웠으나, 은퇴 후에는 정치에 관한 언급을 삼갔다. 치매에 걸린 전직 대통령 남편을 10년 동안 돌보고, 남편이 사망한 후에 그 집에서 그대로 12년간 살다가 남편 옆으로 간 낸시 여사 역시 이제 전설이 되었다.

- 사진 (1) 산타바버라 랜치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부부와 레이건 부부 (2) 벨에어 저택의 레이건 부부가 사용했던 리빙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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