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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高)금리와 인프레 시대
작성일 : 2022-07-22 13:29조회 : 41


고(高)금리와 인프레 시대

 
요즘 어디가나 화제는 이자율이고 인프레다. 오늘날 40~50대 이하 세대는 고(高)이자와 인프레 시절을 살아 보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미 카터는 고이자와 인프레가 함께 달려들었던 시절에 대통령을 지냈다. 베트남 전쟁과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복지 정책으로 인해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1969년에 미국의 재정 건전성은 적신호가 들어왔다. 압도적 흑자를 기록해 온 미국의 상품 교역 수지도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안보 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미국은 더 이상 ‘자비로운 형님’ 노릇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의 달러화 금(金)태환 중지 선언으로 나타났다. 거기에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 쇼크가 닥쳐왔지만 닉슨의 2기는 워터게이트로 휘청거렸고 닉슨을 승계한 포드는 제대로 정책을 펴보지도 못하고 1976년 대선에서 카터에게 패배했다.

카터는 좋지 않은 경제 여건을 물려받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시중 이자율이 가파르게 오르더니 1979년~80년에 집을 모기지로 살 때 적용되는 대출 금리가 18%를 넘었다.
(아래 도표) 자동차를 살 때 적용되는 대출 금리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를 살 때 대출을 해 주는 자회사를 갖고 있던 포드와 GM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15.5~16.5%로 대출을 해주었다. 이런 금리로 집을 사거나 새 자동차를 사기는 어렵고, 불황은 주택 시장과 자동차부터 거세게 불었다.

1977~1978년에 7% 정도이던 인프레는 이란이 석유 금수 조치를 선언해서 촉발된 2차 오일 쇼크 후에 11%가 됐고 1980년에는 13%를 기록했다. 인프레도 두 자리, 이자율도 두 자리라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야말로 Twin Double-digit이 된 것이다. 1979년 겨울이 닥쳐오자 기름 값이 올라서 북동부와 중서부는 전에 없이 추운 겨울 나야만 했다. 그 때 카터는 TV에 나와서 “집안에서 털 스웨터를 입으라”고 했다. 인프레로 물가가 올라가니까 “미국인은 보다 근검하게 살아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대통령을 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뻔했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미국의 대출금리는 6~7% 정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1980년대 레이건 1기 때 뱃장 좋은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의장 덕분에 인프레가 잡혔고, 레이건은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저이자에서 고이자로, 그리고 또 저이자 시대로 급격하게 변하는 바람에 주택 장기 대출을 해온 제2금융권인 Savings and Loans 업계는 전체가 부실화됐고, 결국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에 공적자금을 넣어서 구제해야만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하면서 금리를 지나치게 내렸고 결국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뒤를 이은 오바마 정부도 대선 전에 했던 약속과는 달리 거대 금융회사 편을 들어서 양적 완화라는 전에 없던 정책으로 저(低)이자 기조를 이어 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날 사태가 닥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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